[사설] 대북 농업협력 시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본지가 단독 보도한 북한 청진 주민들의 참담한 생활상은 매우 충격적이다. 발가락이 나온 신발로 역 광장을 기어다니며 울부짖는 소년 등 장면 하나하나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처참한 장면만을 골라 촬영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의 피폐상이 극에 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온 1차 책임은 북한당국에 있다. 더욱 안타까운 노릇은 북한 경제 회생책을 북한 지도부에만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만큼 상황은 절박해졌다.

우선 물품 전달에 그치고 있는 기존의 지원 방식은 수정돼야 한다. 문민정부 이후 우리의 대북 지원액은 1조원이 넘었다. 이 중 상당부분이 쌀과 비료 제공에 충당됐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우리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매년 150만t 정도의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북한 농업생산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느냐에 대북 지원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정부는 농자재의 지원 확대, 감자용 비료 제공, 시범농장 운영 등 구체적인 대북 농업협력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우리의 계획에 북한이 적극 동참토록 유도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또한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도 올해 신년사를 통해 농업생산 증대에 총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처럼 '식량과 비료 등을 많이 달라. 그러면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태도로 나와선 안 된다. 정부도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경우 무턱대고 응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북한을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원 축소'라는 카드를 쓸 필요도 있다.

북한 식량난은 올 데까지 왔다. 그나마 살 만한 곳이라고 알려진 청진 주민들이 시장에서 음식쓰레기를 뒤질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볼 것도 없다. 북한당국의 솔직한 지원요청과 정부의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동시에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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