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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서사론에 대한 이해 깊어 현란한 수사법 자제하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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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올해 평론 부문의 응모작들은 전반적으로 평범하다. 여기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문제 의식 자체가 기성 평단의 관심권 안에 머물러 있다는 점과 연관된다. 유사한 작가들에 대한 유사한 관심과 접근법이 거듭 시험되고 있다는 불만도 없지 않다. 다행스런 것은 대학의 기말 리포트와 같은 글이 줄어든 일이지만, 평론의 문장 자체가 자기 중심적 에세이처럼 논리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해 두고 싶다. 비평 용어의 개념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없이 부정확하게 쓰고 있는 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심사위원들이 걱정했던 대목이다.

평론 부문의 응모작 가운데 본심 과정에서 주목했던 작품들은 '위반의 진정한 완성을 위하여-전경린론'(정재림), '서사의 개방과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김영하론'(이봉일), '말할 수 없는 것의 수사학-김영하론'(소영현),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성석제론'(이성천), '왕성한 산욕과 사랑의 노래-문정희론'(서진영) 등이다. 이 작품들은 자신의 주제를 끝까지 이끌어가는 논리적 설득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논의 자체도 감상적 해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위반의 진정한 완성을 위하여-전경린론'은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루었던 작품이다. 이 글은 전경린의 소설이 보여주는 위태로운 균형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다. 그러나 비평적 진술 자체가 현재법의 문장이 지니는 수사적인 속성 때문에 객관성의 거리 두기에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서사의 개방과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김영하론'은 논의 자체가 평범하다. 기성의 평단에서 이뤄진 김영하에 대한 평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의 수사학-김영하론'의 경우도 비슷한 문제성을 노출하고 있다. 그러나 비평적 논리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 글은 비교적 견실한 문제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왕성한 산욕과 사랑의 노래-문정희론'은 비평 정신의 치열성이 부족하다. 시적 서정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사랑의 의미를 과장없이 해석하고 있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성석제론'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글의 현란한 수사가 비평적 주제의 무게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덮어둘 수 없다. 성석제의 소설이 지니는 서사 구성의 원리를 분석하고 있는 이 글에서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서사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분석과 평가의 일관성이 바로 이같은 논리적 기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적절한 대상에 가장 잘 부합되는 방법과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이는 특징이다. 그러나 글의 무게를 조절하는 법을 더 익혀야 한다. 본심에 올랐던 모든 응모자에게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된 이성천 씨에게 축하를 보내며, 빛나는 비평의 정신으로 살아남길 당부드린다.

◇심사위원:홍기삼·권영민

◇예심위원:장영우·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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