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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구해 쓰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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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종대왕에게도 인재를 가려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던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인재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인물을 구해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쓸 만하다 싶으면 고려왕조에 대한 단심(丹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아니면 '왕자의 난' 등으로 숙청되었거나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은 그 해법을 젊은 선비들의 생각에서 찾기로 했다. 과거시험 문제로 부닥친 난제를 털어놓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듣는 것은 그가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과거제도 개선책부터 세제 개혁의 방법, 그리고 국방정책에 이르기까지 묻는 주제도 다양했다. 1474년의 과거시험 문제는 '인재를 구해 쓰는 법'이었다.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요,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재를 들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진짜 인재와 인재인 척하는 자들은 늘 섞여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구분해 쓸 수 있겠는가? 이날 장원 급제한 강희맹의 답안이 걸작이다. 그는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적합한 자리에 기용한다면 누구라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의 결점만 지적하고 허물만 적발한다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인재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이렇게 하면 "탐욕스러운 사람이든 청렴한 사람이든 모두 부릴 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인재를 분류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을 맡길 만한 '뛰어난 인재'와 반드시 '물리쳐야 할 인재'를 구분하는 일이 그것이다. "마음 중심을 확고하게 세워 자질구레한 절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과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는 사람"은 모두 "국가의 운명을 맡길 만한 신하(社稷之臣)이자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다. 이에 비해 재주가 있더라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사람도 있다. "여색을 밝히고, 끊임없이 재물을 긁어 들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그 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인재를 기르는 일이다. '뛰어난 인재'와 '물리쳐야 할 인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교화의 대상이다. "견문이 많고 총명하나 탐욕스러운 사람, 행정처리를 잘하나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 등이 그 예다. 교화의 초점은 이들의 '총명'과 '행정처리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이들의 '말'을 듣고,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면서 그 장점이 활성화될 때까지 가르치고 기다려야 한다.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있는 모험이다. 실제로 세종은 일관 되게 '장점을 취하는' 인사정책을 폈다. 언관들이 황희.김종서 등을 도덕성 문제로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공적을 이룰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면서 기다렸다. 그들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확신했고, 공적에 의해 그들의 허물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종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관안(官案)만 갖고는 사람들의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안 밖의 인재들이 배제되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세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상소와 과거시험 답안 등을 중시했다. 거기서 풍부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들의 말을 직접 들은 후 서용했다. 황희 등이 관안을 초월해 올린 천거 목록도 중요한 인재 발굴의 통로였다.

최근 교육부총리의 인사 파문을 보면서 새삼 인재 변별의 어려움과 함께 정교하면서도 개방적인 인사 시스템의 중요성, 그리고 인재를 기르지 않고 소모만 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약력=▶서울대 정치학 박사▶'조선시대 정치사상사' 강의▶정조와 세종의 정치사상 등에 관한 논문 20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