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死조사활동 오늘 종료]"과거청산은 이제 국민 모두의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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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시한 만료를 하루 앞둔 15일,일요일임에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 출근한 한상범(韓相範·66)위원장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담담하게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과거 청산과 민주주의 수호라는 바통은 모든 국민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韓위원장은 개성 출신으로 40여년간 동국대에서 법학을 가르쳐온 헌법학자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69년 3선개헌 반대, 72년 유신반대운동에 참여해 주변에선 '반골 교수'로 불린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해오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조사기한이 늘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습니까.

"이미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며, 단순히 기한이 연장된다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아쉬움은 없습니다."

-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자로서 여러 번의 공직 진출 기회가 있었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거절했습니다. 첫째는 과거 정권들이 군사독재정권 혹은 그 잔재정권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미시적인 과거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종합적 통찰력을 요하는 정치나 공무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과거 청산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내 학문적 목표와 부합해 참여한 것입니다."

-인혁당 재건 사건 등 조사시한 만료를 앞두고 굵직한 발표를 잇따라 했는데, 혹시 시한에 쫓겨 조사가 미진한 사안은 없습니까.

"20개월 넘게 조사관들이 열과 성을 다해 의문의 죽음들을 규명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고 이제 그 성과를 종합하고 있습니다. 또 8명의 위원들 모두가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 풍부한 지식과 의견을 지녀 졸속 처리될 염려는 없습니다."

-출범 당시의 기대에 비해 성과가 미진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습니다.

"수사권한을 가진 검찰이 일반 살인사건을 처리하는 데도 3~5년 걸립니다. 하물며 수사권도 없는 기관이 짧은 기간에 과거 정권의 정보기관들이 벌여놓고, 은폐하려는 사건들을 다시 꺼내 진실을 밝히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만족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짧으나마 과거 청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그 기회를 살리려고 위원회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위원장 취임 후 힘들었던 점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정보기관 등을 상대하면서 참 난감했습니다. '국정원법이 정보공개법에 우선한다'라든지 '기무사는 대통령에게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를 들어 위원회의 조사에 별로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반관반민(半官半民)으로 위원회가 구성되다 보니 일부 잡음이 있다고 해 취임 때 걱정했는데 '규명위 활동은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고 공권력이 사유화하는 것을 막는 활동일 뿐 진보 대 개혁의 싸움이 아니다'는 당부를 직원들이 잘 이해해줘 그 부분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위원회의 활동을 두고 '정치적 보복'이라며 위법·위헌성을 제기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단호하게)우리가 맡고 있는 사건들은 희생자가 모두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젊은 학생들,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던 지식인들, 그리고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생존권을 위해 싸운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게 어떻게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겠습니까. 이건 당위의 문제입니다. 일부에선 김대중 대통령의 과거 행적·정치적 성향 등을 위원회의 탄생 배경과 묶으려고 하지만 어불성설입니다. 金대통령은 위원회 활동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위원회의 성과를 꼽는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과거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세우는 작업은 국민 개개인의 몫이고 이런 국민적 노력이 활성화할 때 미래에 있을지 모를 권력에 의한 살인 또는 독재정권 자체를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이런 차원에서 국민에게 과거 군사정권의 부당한 권력구조와 그 사용행태를 노출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인권을 연구하는 법학자로,또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운동가로 돌아갈 것입니다. 다만 위원회가 해산할 때까지는 위원회 활동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들을 막아내기 위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남궁욱 기자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6일로 조사활동을 마무리한다. 공식 기구 해체는 내년 3월이지만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명시한 조사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는 목표와 함께 2000년 10월 17일 출범한 지 1년11개월 만이다. 활동 시한 만료를 앞두고 위원회의 활동 기한 연장과 권한 강화를 담은 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반세기 전인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반민특위)가 일제 잔재 청산을 기치로 내건 데 비해, 의문사진상규명위는 군사정권에 의한 현대사의 얼룩 청산을 내걸었다. 반관반민(半官半民) 기구로 구성돼 2천회가 넘는 출장조사를 기록한 위원회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 일지>

▶1999년 12월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 국회 통과

▶2000년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 출범. 초대 위원장 가톨릭대 양승규 대우교수.

▶2000년 12월 조사 대상 사건 83건 확정

▶2001년 1월 공식 조사활동 시작

▶2001년 6월 84년 청송교도소에서 숨진 박영두씨,'민주화 운동 관련 공권력에 의한 사망' 첫 인정

▶2001년 7월 법 개정 통해 조사기한 6개월 연장

▶2002년 1월 양승규 위원장 사임

▶2002년 3월 법 개정 통해 조사기한 6개월 연장

▶2002년 4월 한상범 위원장 취임

▶2002년 5월 최종길 교수 사건에 대해 민주화 관련성 인정

▶2002년 7월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 사건 민주화 관련성 인정 및 국가보안법 개정 권고

▶2002년 9월 '인혁당 사건 중정(中情) 조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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