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넘어서도 새언어 배워 통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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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제회의 통역·번역 역사의 산증인이랄 수 있는 프랑스 파리 3대학 통역·번역대학원의 마리안 르데레르 교수와 카를라 드장 교수가 최근 방한했다. 3~4개국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외국어의 두 달인은 40여년간 각종 정상회담을 비롯해 국제회의의 가교 역할을 맡아온 통역·번역 분야의 세계적 베테랑이다. 특히 드장 교수는 60세가 넘어 새로운 언어를 배워 국제회의를 동시 통역할 정도로 숙달해 관련 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한국 국제회의 통역학회(회장 최정화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주최로 열린 제1회 통역·번역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두 교수를 만나 통역·번역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당신들은 수많은 정상회담과 국제회의 통역을 맡았는데 기자로서 그 이면사가 궁금하다.

마리안 르데레르=통역사가 통역에 얽힌 뒷얘기를 공개하는 것은 금기다. 한가지만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너무도 뻔한 상식적인 얘기들만 하기 때문에 대화의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카를라 드장=수많은 사안을 깊이 알기보다 넓게 아는 데서 오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정상회담의 성격상 논쟁보다는 외교적 언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통역과 번역은 어떤 차이가 있나.

르데레르=의사소통의 기본 원칙은 같다. 그런데 통역은 실시간으로 상황이 변하는 반면 번역은 통역에 비해 시간의 여유가 있다. 통역은 즉각적 이해와 대처 능력을 요구한다. 번역은 엄정한 표현 능력을 요구한다.

-어렵게 공부했는데 사회적 대우에 만족하는가.

드장=만족한다. 고소득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인터뷰에 동석한 최정화 교수는 유럽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루 6시간 동시통역에 70만원 가량 받는다고 했다).

-한 나라의 경제력과 그 언어의 국제적 위상과는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지 모르겠다.

드장=언어의 위상은 그 언어를 말하는 민족의 노력과 관련있다. 내 조국인 독일의 경우 독일어를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고 더 많이 사용하자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분담금을 많이 내는 나라가 독일인데도 유럽연합의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다.

-통역사에 여성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르데레르=국제회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지식인이 자의반 타의반 자기 나라를 떠나야 했다. 외국어 실력과 각 분야의 지식을 겸비한 이 남성 지식인이 50~60년대 동시 통역계를 지배했다. 이후 전문 통역·번역 학교가 생겨 제도적 교육이 시작되면서 여성들이 많이 입학하기 시작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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