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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섬마을 아이들 줄넘기 국가대표로 런던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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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북 울릉도 저동초등학교와 우산중의 10명의 학생. 천방지축 놀기 좋아하는 녀석, 평발이어서 뛰는 게 불편했던 아이, 경기를 앞두면 울보가 되는 소녀. 이 아이들이 영국 런던 줄넘기 세계선수권(주니어)에 참가하는 국가대표다. 런던 대회는 국내 선발전과 각 대륙 선수권을 거친 40개국이 참가하는 본선 무대다. 국가대표는 27일 출국했다. 이들의 팀명(名)은 ‘줄생(生)줄사(死)’. 지난해 한국 대회 우승, 홍콩 아시아선수권 준우승팀이다. 관객 839만 명을 동원한 영화 ‘국가대표’. 스키점프 대표팀이 만들어진 건 ‘방 코치(성동일 분)’의 유별난 꿈 덕이었다. 집요함과 우직함. 바로 그의 역할을 한 이가 저동초등학교의 김동섭(49) 교사다. 그는 4년 전인 2007년 울릉도에 부임했다. 섬에 오기 전부터 김 교사는 ‘줄넘기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10여 년 전부터 그는 ‘음악 줄넘기’라는 독특한 레크리에이션을 가르쳐왔다. 그 사실을 안 학부모들이 선생님을 찾았다.

울릉도 저동초등학교·우산중학교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줄생줄사팀은 28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요즘 애들이 비만이라 걱정이에요. 패스트푸드 같은 거 많이 먹어서요. PC게임도 많이 하는 거 같고.”

김 교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라지요. 동아리처럼 즐기죠.”

그가 줄넘기를 시작한 건 1995년이다. 깡촌 중의 깡촌인 경북의 무을분교에 발령받은 직후였다. 5~6학년 35명 중 20명이 조부모나 편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느 날 신문에서 ‘줄넘기 축제’ 광고를 접했다. ‘이거다’ 싶었다. 김 교사는 그 길로 서울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러 상경했다. 그곳에서 음악 줄넘기를 처음 보급한 이왈규(92)옹을 만났다. 그는 이옹에게 읍소했다.

이옹은 동요 ‘고향의 봄’에 맞춰 다양하게 줄을 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몇 가지를 배워 온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음악 줄넘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음악이 줄넘기 속도에 비해 템포가 느렸다. 음악과 몸이 따로 놀았다. 김 교사는 노래 잘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에게 사정 얘기를 한 뒤 노래방에 데려갔다. 줄넘기 속도에 맞추기 위해, 김 교사는 노래방에서 줄넘기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교팀의 줄넘기 프로그램은 경북 도교육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울릉도 저동초등학교 강당에서 선수들이 ‘더블더치’ 종목을 연습하고 있다. 양쪽 끝에 선 두 선수가 줄의 끝을 잡고 돌리면 가운데서 점프하는 방식이다. [김형구 인턴기자(명지대 디지털미디어4)]

그가 을릉도에서 ‘진주’들을 만났다. 줄넘기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그로 인해 인생이 즐거워지는 아이들. 그래서 어느새 전국 최강의 줄넘기팀으로 성장한 아이들.

길웅(12)이는 집중력이 많이 부족했다. TV를 앉아서 보지 못할 정도였다. 여기저기 부딪혀 이마엔 꿰맨 자국이 두 곳이나 있다. 심한 평발이어서 어린 시절 수술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길웅이가 줄넘기를 하면서 변했다. 길웅이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읽고 자기 몸을 거기에 맞출 줄 알게 됐다. 길웅이는 "섬마을 촌놈들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어머니(34)가 중국 동포인 주영(12·여)이는 팀의 에이스다. 주영이네는 넉넉지 못하다.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교사가 ‘일요일 가족 줄넘기’ 숙제를 냈다.

동네 사람들이 일요일에 다 모였다. 혼자 넘는 줄넘기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넘는 줄넘기. 많은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놀았다. 주영이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줄넘기는 아이들의 삶으로 파고들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는 아이들의 의지는, 이미 국가대표급이다.

줄넘기에는 여러 종목이 있는데, 줄생줄사의 주특기는 ‘단체 더블더치’다. 양쪽에 마주 선 두 사람이 한 손에 한 개의 줄, 모두 두 개의 줄을 동시에 돌린다. 그럼 선수가 그 사이로 파고들어 엇갈려 내려오는 줄을 뛰어넘는다. 난이도가 높은 종목 중 하나다.

런던 세계선수권은 8박9일 동안 치러진다. 그러나 줄생줄사는 5박6일만 참가한다. 경기가 있는 날만 체류하는 것이다. 10명의 아이가 런던에 다녀오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김 교사는 경북도 교육청 등을 통해 사정 얘기를 전달했다. 학교 동문회에서는 발전기금을 털었다. 부모들은 쌈짓돈을 보탰다. 교육청의 한 직원이 ‘특별재량사업’으로 선정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25일 줄생줄사는 마지막 훈련을 끝냈다. 혜원이, 길웅이, 도영이, 주영이, 민지, 노을이, 수민이, 혜빈이, 수진이, 민정이. 김 교사는 10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연습 일지를 천천히 넘겼다. 교사는 출국을 앞둔 주말 아이들의 운동화를 빨았다. 런던으로 갈 10켤레의 신발을.

울릉도=박정언 기자, 조혜랑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 4)
사진=김형구 인턴기자(명지대 디지털미디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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