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D-18>"아시아 무적 金메달 쌍돛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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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20여일 앞두고 요트선수 진홍철(32·해운대구청)에게 자존심 상하는 제의가 들어왔다. 87년 요트에 입문한 이래 줄곧 몸담아온 레이저급을 포기하고 OK딩기급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면 어떻겠느냐는 권유였다. 진홍철은 당시 레이저급에서 김호곤(31·대구도시개발공사)에게 밀려 아시안게임 출전 자격을 잃고 연습 상대로 훈련 중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호곤이에게 밀리지 않았었는데…."

그러나 그는 '아, 옛날이여'를 빨리 잊기로 하고 태국에서 급히 임대해온 낯선 요트에 올랐다.

94년 대회까지도 정식종목이 아니었던 OK딩기급은 이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는 태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방콕대회 때 처음 정식종목이 됐고, 요트협회에서는 진홍철을 적임자로 봤던 것이다.

"무게가 레이저급보다 12㎏ 더 나가는 72㎏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다른 게 없었어요. 그래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지요."

짧은 훈련량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호곤과 나란히 금메달을 따냈고, 한국의 종합2위 달성에 한몫을 했다. 한국 요트의 '쌍돛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김호곤과 진홍철은 국내 대회는 물론 각종 아시아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김호곤은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요트 세계랭킹 30위 안에 들었고, 진홍철은 올초 뉴질랜드에서 열린 OK딩기급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사상 최고의 성적인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종목이 갈리기 전 두 사람은 살벌한 라이벌이었다.

둘 다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를 지냈고 87년에 똑같은 레이저급으로 요트에 입문했다. 출발은 선배인 진홍철이 좋았다. 8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91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93년에는 김호곤이 대회 출전권을 따내 국제대회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 홍철이형에게 출전권을 빼앗겼지만 그해 가을 전국체전 이후로는 제가 거의 다 이겼죠."

사실이었다. 김호곤의 기량은 놀라보게 향상됐고, 이후 국제대회 출전권을 독식했다.

요트협회 김영배 이사는 "두 사람 모두 아시아권에서 최고의 기량을 갖췄는데 종목이 겹쳐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OK딩기급이 생겨 그 안타까움을 해소해준 것이다.

현재 대표팀의 맏형들인 이들은 31명의 후배들과 함께 매일 부산 앞바다를 가르며 또 다른 금메달을 꿈꾸고 있다. 박지철 코치는 "앞으로도 몇년간은 이들이 한국 요트의 기둥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높이 사고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목이 달라졌다고 해서 두 사람의 라이벌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바다에 나가기 전, 김호곤이 "결혼은 내가 더 빨랐다"고 말하자 진홍철은 "아기는 내가 더 먼저 갖겠다"고 되받았다. 둘은 모두 결혼 3년 째를 맞고 있다.

부산=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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