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사안 방향 제시 신속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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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간 후 연일 보도되는 비보가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또 대선을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동향과, 9·11 테러 일년을 맞으면서 나타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 역시 그 여파가 어디까지 이를지 우려를 자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은 언론이 그런 부분들을 구석구석 만져주기를 기대한다. 반면 시민 각자에게 받아들여지는 아픔과 우려의 정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언론은 고민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일주일 간 중앙일보의 뉴스 구성은 비교적 잘 짜여졌다. 수해 문제를 연일 1면에 놓았으며, 아울러 4개 신도시 개발과 주 5일 근무제 시행 관련 기사를 중요하게 다뤘다. 정치권의 움직임과 9·11 1주년을 맞는 미국의 동향, 그리고 지구정상회의 등도 꾸준히 보도했다.

우리는 언론, 특히 신문에 정책사안의 설정에 앞장서는 주도적이고, 비판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태풍 피해 보도 첫날이었던 2일자의 경우 왜 태풍 피해가 이토록 큰 규모일 수밖에 없었는지 신속하게 알렸어야 했다. 단순히 태풍의 위력이 커지게 된 기상학적 요인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이와 같은 참사들이 과연 피할 길 없는 천재지변인지, 왜 이렇게 많은 수재민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또 피해를 줄일 수는 없었는지 비판적으로 물었어야 했다.

수재 현장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보도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자발적인 도움을 이끌어내고자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휴머니즘적인 공감대 조성을 넘어서는 비판적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또 정책 사안을 설정하는 데 있어 신속하게 앞서 가야 한다. 상황보고에 이어 즉각적인 정책 설정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5일자에야 등장한 '하천관리 뒤죽박죽'(5면)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정치면 역시 뒤늦게 따라가기로 일관했다. 미국에서 언론은 정책결정자들의 선도적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한다. 지난 일주일 간 정치권 소식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표주자들' 간에 오가는 대화를 그대로 보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물론 우리 정치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신당 창당, 한나라당의 방송사 협조공문 파동, 병풍에 이르는 일련의 문제들의 핵심을 짚어주고 정치권에도 경종을 울렸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총리서리제의 문제를 연속적으로 지적한 사설(2,4일자 2면)은 여론을 주도하고 정책결정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좋은 내용이었다.

언론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시민교육이다. 이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을 배양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시리즈로 보도된 '9·11 테러 일년'과 함께 소개된 서적들은 독자들의 문제인식을 돕고자 하는 시도로 여겨진다. 2일자 18면에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 공저의 『평행과 역설』을 다루면서 예술을 통한 화합을 강조했고, 3일자(15면)엔 이슬람문명 비판서 2권을 소개했다. 또 5일자(12면)에 『가공할 사기극』의 저자를 인터뷰한 데 이어 7일자(8면)에는 프랑스 반미서적을 소개하면서 세계의 미국화에 대한 자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일련의 보도에 대한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시리즈로 구성했을 때는 분명 일관된 플롯이 있었을 터인데 그 진행 과정에서 중앙일보의 시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자들의 시각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론 스스로 시각을 지녀야 한다. 앞서 가는 언론, 정책사안 설정을 주도하는 색깔 있는 언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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