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불편한 것 너희들 잘못이 아니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그 날 오전, 너희들이 들어올 때만 해도 난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 함께 오신 선생님이 미리 말씀하신 탓도 있지만 밖에 나서면 늘 특별한 아이로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이었지. 그게 배려라고 내 딴엔 다짐했고.

그런데 얼마 뒤 너희들이 책방 안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발걸음도 바빠지기 시작했지. 던져놓은 책을 줍고 흩어지고 넘어진 책들을 정돈하고 일으켜 세우며, 제법 바쁜 척하고 다녔잖아.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바닥에서 두 뼘 높이밖에 안 되는 낮은 어항에 손을 넣어 휘저을 때 금붕어들이 해를 입을까봐 황급히 쫓아가 가로막았던 일, 결국 물 위에 떠있는 부레옥잠이 일그러졌지만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가슴까지 쓸어내리고.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보림)에 나오는 쿠슐라는 신체 장애와 정신 장애를 동시에 지니고 태어난 중복장애 소녀야. 그 부모는 만 3년 동안 아이의 성장 단계에 맞춰 1백50여권 가량의 그림책을 읽어주며 쿠슐라를 치유했는데 그걸 보며 쉽게 생각했나 봐. 아, 이렇게도 가능한가보다 하면서.

『한 아이』(아름드리)의 주인공 쉴라는 쿠슐라와는 다른 이유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정서 불안을 겪는 아이였어. 어른들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어른들은 그 애를 쉽게 포기했지. 모두가 버린 쉴라를 토리 선생님이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쉴라는 변하기 시작했어. 그들을 보며 나는 착각했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막상 너희들과 맞닥뜨렸을 때 그 착각은 여지없이 깨졌지.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나에게 막 화가 나기도 했어. 이럴 때 어찌해야 하나.

『상계동 아이들』(시공사)의 형일이는 그 가난한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지냈고 마을 아이들도 형일이와 노는 걸 당연하게 여겼어. 그런데 마을이 철거되고 같이 뛰놀던 친구들이 모두 흩어졌지. 이후 형일이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는데 그곳에서도 상계동에서처럼 행복했을까?

재작년까지 너희 같은 친구들이 달마다 찾아왔단다.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속한 어른들이 만든 멀티슬라이드를 보러, 또는 놀이에 참여하러. 그때 어머니들은 마치 죄인인 양 책방 밖에서 서성였고, 그 친구들이 책방에 들어가려고 하면 책방에 해가 될까 봐 한사코 말리며 지하 문화공간으로만 손을 이끌려고 애썼지. 그러다 보니 어울리며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갔고 그나마 서로 끈이 되어주던 토막 행사가 없어진 뒤로는 다시 볼 수가 없었어. 정신없이 쏘다니던 네 친구들도, 큰일 날세라 황급히 뒤쫓던 어른들도 모두 다 없어.

『네 잘못이 아니야』(황금두뇌)에 나온 강혁이처럼 네 잘못이 아닌데… 왜 너희들을 안으로만 가두게 했을까? 얘들아, 언젠가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쿠슐라·쉴라·형일이·강혁이 모두 많은 친구들과 만났으면 좋겠어.

<어린이 책 전문서점 '동화나라'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