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이슬람 문명 갈등 脫근대 재촉 계기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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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 태생이나 교육은 미국에서 받았다. 음악적 정서로는 프랑스 쪽이고, 무대는 세계이니 그는 영원한 나그네일까?" 드뷔시·라벨 음악에 강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유럽 데뷔 무렵 프랑스의 피가로가 했던 말이다. 얼마 전 새 음반 '백건우가 연주하는 포레'(데카)의 경우 "백건우가 프랑스 음악을 구해냈다"는 극찬을 현지에서 받았음을 염두에 둔다면, 일찌감치 정곡을 찔렀던 평가였던 셈이다.

어쨌거나 또 한명의 지구촌 나그네가 있다면,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컬럼비아대 교수)가 아닐까 싶다. "(삶의 내내) 나는 아웃사이더였고, 지나가는 나그네였다." 백혈병 선고를 받은 직후 쓰기 시작한 자서전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살림,2001)에서 사이드는 자기 삶을 그렇게 규정한다. 원제가 'Out of Place'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팔레스타인계 미국학자라는 엉거주춤한 자기 정체성, 동서양 문명 사이에 끼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겉도는 삶에 대한 은유다.

그 때문에 백건우와 달리 '문명 나그네'가 주는 울림은 다소 무겁다. 에드워드라는 영어 이름에 사이드라는 중동 성(姓)이 붙어 있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운명의 그가 1978년에 출간했던 『오리엔탈리즘』은 우리시대의 지식 지도를 바꿔놓은 명저술로 꼽힌다. 동서양 문명 사이에 낀 학자의 예민한 시선 아래 '서양근대의 허구'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고전의 메시지는 알고보면 간단한 얘기다.

유럽인이 논리와 정확성을 타고났다면, 동양인은 우둔한 거짓말쟁이라는 '공인된 착각'에 대한 반격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위대함은 따로 있다. 근대 서구의 발명품인 '가짜 동양·왜곡된 동양의 이미지'(오리엔탈리즘)라는 마술의 구조까지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서구는 무적함대와 대포뿐 아니라 문화 헤게모니, 즉 지식권력까지를 장악했다. 서구는 이 오리엔탈리즘에 객관적 진리 혹은 학문인양 치장했다.

그 앞에 동양은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거의 자기 모멸에 빠지기도 했다. 탈(脫)서구를 모색하면서도 '서양=따라가야 할 모델'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의 두 얼굴이 설명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서양 근대문명의 전략에 '노!'하는 목소리를 냈던 중동계 학자 사이드가 미국에서 존경받는 지성으로 꼽힌다는 점은 분명 아이러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서구 학계가 모더니티에 대한 반성(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을 거의 한세대 이전부터 진행해온 큰 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 논의와 상관없이 서구-중동의 문명 갈등이 대폭발한 사건이 1년 전 9·11 테러였다. 흥미로운 점은 9·11을 보는 한국 지식사회의 반응이다. 약간의 과장이 허용된다면, 국내 출판계는 9·11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도 있을 법하다. 우선 양적으로 이슬람 관련서와 미국 비판서가 봇물을 이뤘다. 특정 대륙, 특정 문명권에 관한 출판물이 단기간에 이토록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일이 있었던가 싶은 대목이다.

한국사회가 미국 짝사랑, 혹은 해방 이후 미국과의 오랜 '시각 공유'에서 벗어나는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중앙일보 지면만 해도 그런 변화를 반영한다. '행복한 책읽기'의 경우 한달 전 9·11 이후 국내 지식사회 동향을 분석한 데 이어, 지난 주 정수일 교수의 『이슬람 문명』(창작과 비평사)을 소개했다.

지난 3일자 문화면에 이란 하타미 대통령의 『문명의 대화』(지식여행)와 함께 나란히 나간 버나드 루이스(프린스턴대 교수)의 『무엇이 잘못되었나』(나무와 숲)도 묵직한 문제 제기로 손색이 없다. 논의의 진지함도 그렇고 대표성도 높다. 단 버나드 루이스는 중동을 바라보는 서구사회의 기존 시선을 대표하는 주류학자 중 으뜸에 속한다. 때문에 사이드와는 정반대 쪽의 학자다.

루이스는 묻는다. 서구가 근대 이후 세계사를 제패한 데 비해 중동은 후진성에 마냥 머물렀던가? 아마도 사이드라면 이렇게 대꾸했으리라.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서구 중심주의에 물들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제 제기다." 글쎄다. 정답은 없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9·11은 세계사가 탈근대 쪽으로 문명의 계절이 바뀌는 속도를 재촉할 것이 분명하다. 그 복판을 걷는 지금 변화하는 세계 속의 한국을 모색할 뿐이다.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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