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 부동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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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침체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주택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주택가격은 거의 예외없이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웃돌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올들어 7월까지 부동산가격이 20.9% 올랐고, 호주와 캐나다·스페인의 부동산 값도 올들어 10% 이상씩 상승했다. 올해 1~7월 중 미국의 부동산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9%에 비해서는 다소 낮지만 여전히 7%의 견조한 오름세를 지속했다. 특히 뉴욕과 워싱턴·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의 주택가격은 지난해말에 비해 18~20%씩 두자릿수로 올랐다.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부동산 시장의 호황이 주식시장의 침체와 낮은 금리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주가침체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주식을 버리고 주택시장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주가가 오르고 경기가 좋아질수록 주택투자도 늘었으나 최근 2년간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00년 초 주식을 팔고 부동산을 산 영국 투자자는 자산가치가 40% 증가한 반면 주식을 계속 보유한 경우엔 35%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수십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장기 주택저당대출(모기지론)금리를 부동산 가격상승에 불을 붙인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의 30년만기 주택저당대출 금리는 최근 35년 만에 최저치인 6.25%를 기록했다. 경기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이같은 저금리 추세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선 주택저당대출 금리가 5.5% 아래로 떨어지자 너도나도 돈을 빌려 주택구입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도 6%대의 주택저당대출 금리가 최근의 주택시장 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도 97년 외환위기의 부담을 털고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있다. 최근들어 돈을 빌려주려는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택구입자금 대출금리는 3.5%까지 떨어졌다.

미국에선 특히 기존에 고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바꿔탄 후 남은 돈으로 새 집을 사거나 집을 개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저금리로 시중에 넘치는 돈이 여러 경로로 주택시장에 흘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내집마련' 대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도 주택가격 상승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주택판매의 호조에 힘입어 주식시장에선 주택건설 관련 주식과 건축자재 관련 종목이 유망한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주택시장에 과도하게 자금이 몰리자 주택가격의 버블(거품)현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버블붕괴처럼 주택시장에서도 버블이 꺼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주택구입 자금이 대부분이 부채로 조달됐다는 점을 들어 주택시장의 거품은 주식시장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급격한 금리인상만 없다면 주택시장 붕괴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주택구입을 권하고 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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