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다면…" 감독은 뒷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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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투자상담사가 도마에 올랐다.

최근 발생한 대우증권 직원의 기관 계좌 도용사건에 전업 투자상담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난 데다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가조작(작전)사건에도 이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투자상담사들이 이처럼 주가조작 사건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금융감독원과 해당 증권사의 관리·감독을 덜 받는 데다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증권사들이 약정고(매매중계)수수료를 많이 챙기기 위해 투자상담사의 불법적인 매매행태를 방치하는 측면도 있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증권사의 수익 중 약정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0%가량에 이른다.따라서 증권사들은 약정을 많이 올리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들이 애용하는 방법은 우수한 전업 투자상담사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업 투자상담사들의 1인당 평균 약정금액은 일 평균 11억원으로 증권사 일반 영업직원들의 평균 약정고(3억원)보다 엄청나게 많다.

D증권의 한 지점장은 "전업 투자상담사는 유치한 약정고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만큼 증권사 일반직원에 비해 훨씬 많이 노력한다"며 "그러나 일부 투자상담사는 무리한 일임매매나 불법적인 시세조종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소형 증권사의 경우 전업 투자상담사가 유치한 약정고가 전체 약정고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전업 투자상담사는 증권사 영업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따라서 스타급 투자상담사를 유치하기 위해 증권사간에 치열한 스카우트전도 자주 벌어진다. 모 증권사의 한 지점은 올 상반기 중에 한명의 스타급 전업 투자상담사 덕분에 옵션 약정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S증권의 지점장은 "약정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증권사들은 불공정 매매 잡음에도 불구하고 영업력이 뛰어난 투자상담사를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며 "일선 지점장들은 투자상담사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약정을 어느 정도 유치해 오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투자상담사가 낀 작전 사례=이번에 발생한 델타정보통신 사기 매매사건은 K증권의 투자상담사를 지낸 정모씨와 D증권의 투자상담사인 안모씨가 주역이었다.

이들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델타정보통신 주가를 끌어올리다 나중에 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현대투신운용의 계좌를 도용해 보유 주식을 떠넘겼다.

또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채업자와 코스닥 등록기업 대주주들은 작전에 나설 때는 반드시 전업 투자상담사를 포섭하곤 했다. 지난 5월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S정밀의 李모 대표는 K증권 투자상담사 李모씨와 함께 이 회사 주가를 조작해 5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기도 했다.

▶투자상담사는=증권사에서 영업력을 인정받은 직원 중 일부와 증권사에서 퇴직한 직원들이 주로 전업 투자상담사로 나선다. 성과급은 유치한 약정의 20~30% 가량으로 증권사 일반 영업직원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이에 따라 일부 유명 전업 투자상담사는 수억원대의 수입을 올리고 있고 이 중 일부는 투자상담사 자격도 없는 사람을 고용해 이른바 '새끼 투자상담사'를 두기도 한다.

이희성·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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