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금 무이자'가 투기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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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회사원 김모(38)씨는 이달 초 인천시 서구 검암동 A아파트 3차 33평형 분양권을 친인척 명의로 3개나 샀다. 분양가의 10%인 계약금 1천3백만원에 프리미엄 1천만~2천5백만을 얹어줘도 1억원이 채 들지 않았다.金씨가 이처럼 분양권을 대거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중도금 무이자대출제 때문이다. 金씨는 "입주 때까지 중도금을 내지 않아도 돼 기존 아파트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을 것 같아 분양권을 많이 샀다"며 "리스크는 있지만 분양권 값이 계속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인천·용인·남양주·광주·수원·김포시 등 수도권과 충남 천안시 일대에서 분양 중인 아파트에서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이런 곳에선 일부 투자자들이 많게는 10개까지 분양권을 매입하고 있다. 광주시 초월면 B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여윳돈 5천만~7천만원을 가진 소액 투자자들도 당장 목돈이 안 든다는 이유로 중도금 무이자 분양권을 2~3개 사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분양한 광주시 초월면 쌍동리 L아파트의 경우 중도금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28평형의 분양가는 1억1천6백만원으로 프리미엄이 7백만~8백만원 붙어 있다.

계약금(1천1백60만원)과 웃돈을 합쳐도 2천만원을 넘지 않아 1억원이면 분양권 5개를 살 수 있다. 인근의 C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본인 명의로 특정아파트 분양권을 많이 사면 세무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매수자 명의와 지역을 분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최근 투기열풍이 불고 있는 남양주시 호평·평내택지개발지구, 용인시 죽전지구, 김포시 풍무동 일대도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이나 투자자들이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를 적용하는 분양권을 2~10개씩 사들인다고 현지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서울에서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를 적용하는 오피스텔 분양 현장에서도 한꺼번에 여러 채 분양을 받는 투자자들이 보인다.

S건설이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선릉역 부근에서 분양한 주거용 오피스텔의 경우 계약금(1천2백만~3천만원)을 내고 2~5채를 분양받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S건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초기자금이 많이 들지 않는 탓인지 선릉역 부근의 오피스텔은 3채를 분양받는 투자자들이 5명,5채 이상도 1~2명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금여력을 감안하지 않은 채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만 믿고 분양권을 사거나 분양받을 경우 부동산 경기 위축 땐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세중코리아 한광호 실장은 "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계약자가 당초 회사측이 내도록 한 무이자분에 대한 대출이자분을 부담해야 하고, 일부 분양권은 거품조짐이 있는 만큼 안전투자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기자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가 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큰손'은 물론 일반 투자자까지 나서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서울·수도권에서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를 실시하는 중소형 아파트·오피스텔을 대거 사들인다. 당초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가 되레 분양권 시장을 투기판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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