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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된 최고령 축구화 돌아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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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발목까지 올라오는 두툼한 쇠가죽, 군화의 앞부분처럼 생긴 코, 가죽으로 만든 스터드(봉). 1920년대에 만들어진 국내 최고(最古)의 축구화가 50년 만에 돌아왔다. 긴 세월 홍콩과 영국을 여행하며 바랜 색깔만큼이나 사연이 담긴 골동품이다. 바로 50~60년대 '아시아의 황금 다리'로 불렸던 스트라이커 최정민(83년 작고)씨의 '보물 1호'. 축구자료 수집가 이재형(43)씨가 지난 연말 영국에서 입수해와 5일 공개했다.


바로 이것 50년 만에 돌아온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화. 발목이 길고, 밑창에는 왕년의 축구스타 최정민씨가 쓴 사인이 뚜렷이 남아 있다.임현동 기자

묵직하다. 한짝에 450g. 요즘 최신형은 196g이니 두배 이상 무겁다. 흰색 끈이 아직도 묶여 있다. 양쪽 밑창엔 '崔貞敏'이라는 서명이 선명하다. 밑창에 붙은 6개의 스터드는 가죽 세겹을 붙여 못으로 고정시켰다. 가죽이지만 쇠처럼 단단하다. 당시 축구선수들은 조그만 망치를 갖고 다니며 못이 헐거워지면 하프타임 같은 때 다시 단단히 박았다고 한다.

발목 긴 부츠형, 수집가 이재형씨 입수

이씨가 이 축구화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1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축구용품 수집가 클라우디오 파스쿠알린이 발간하는 축구 수집 잡지 'offside'에서다. 선수 시절의 최정민씨 사진과 기사 스크랩, 그리고 이 축구화를 영국의 한 소장가가 갖고 있다는 내용이 실렸던 것. 수소문 끝에 이 소장가를 만난 이씨는 끈질긴 설득 끝에 축구화와 스크랩 등을 모두 사왔다.


1956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최정민씨(뒷줄 점선)와 한국선수단.[축구자료수집가 이재형씨 제공]

이씨가 전하는 축구화의 사연은 이렇다.

26년 평양에서 태어난 최정민씨는 어린 시절 친지로부터 쇠가죽 축구화를 선물받았다. 당시 국내에 한곳뿐인 축구화 제조업체 '서선(西鮮) 양화점'에서 만든 수제품으로 축구선수의 선망이던 귀한 물건이었다. 최씨는 한번도 신고 뛰어보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 간직했다. 1.4후퇴 때 남으로 내려올 때도 가장 먼저 챙겼다고 한다. 이후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하던 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때 만난 영국인 팬에게 이 축구화를 선물로 줬다. 그리고 작고할 때까지 다시는 보지 못했다.

우연일까. 옛 평양의 서선양화점은 지금 서울에 맥이 살아 있다. 서선양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월남해 서울에서 '서경(西京)체육사'를 차려 축구화를 만들었던 노종영(97년 78세로 작고)씨의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동대문운동장 ?'서경스포츠'를 운영하고 있는 노지호(48)씨다.

밑창엔 50~60년대 스타 최정민씨 사인

지난해 12월 30일 이씨가 가져간 '최정민 축구화'를 보고 노씨는 "아버지가 일했던 서선양화점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며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리상자에 보관하고 있던 낡은 축구화 한짝을 꺼내들었다. 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했던 김용식(85년 작고)씨가 신었던 것과 같은 제품으로, 아버지 노씨가 가보로 물려준 것이라고 했다.

"축구화는 발목이 긴 장화형에서 점차 짧아지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발목 형태로 보아 최정민 선생 축구화가 김용식 선생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네요. 20년대에 만들어진 것 같아요"라고 노씨는 말했다.

김용식씨의 축구화에는 밑창 앞 부분에 반달 모양의 요철이 더 있고, 발등 부분에는 볼의 회전을 높이기 위해 새긴 네개의 줄이 있다. 기능을 좀더 살린 '신식'인 셈이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서 소장 중인 가장 오래된 축구화는 60년대 후반 정병탁 선수가 신었던 아디다스 제품이다.

정영재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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