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오리고 베끼면서 학습 부진 열등감 떨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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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말하기' 영역의 수행평가로 모둠 토론 학습을 할 때였다.

마침 신영(16·가명)이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앞 발표자의 뒤를 이어 쪽지에 쓴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등교하면 울면서 집에 가기 일쑤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신영이였다. 그러나 비록 말을 더듬긴 했지만 그의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신문 가위질로 시작한 석달 동안의 NIE 활동에서 성취감을 느낀 신영이가 이제 어엿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신영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표 자료를 만들어 주는 등 신영이가 토론에 참여하도록 배려한 학생들이 고마웠다.

내가 신영이에게 처음 가위질을 가르쳐 준 것은 새 학교에 부임해 모든 것이 낯선 학년 초였다. 시험지를 나눠주는데 손사래를 치며 받기를 거부하고 이내 책상 위에 엎드리는 학생이 있었다. 한마디로 지적 발달이 더뎌 관심에서 제외된 학생이었다.

어느날 아침 이른 출근길에 등 뒤에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보니 바로 그 학생이었다.

"신영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선생님과 3교시에 만나겠네요."

그 학생은 어눌하지만 명랑한 목소리로 자기를 소개하며 나를 아는 체했다. 운동장을 걸으며 대화를 하다 보니 신영이는 신기하게도 내가 들어가는 수업 시간을 꿰고 있었다.

신영이와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의 아침 교무실 방문이 시작됐다.

나는 나와 친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교무실에 찾아와 말을 거는 신영이가 솔직히 말해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맑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뭔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뜻 스크랩하려고 책상 한쪽에 모아뒀던 신문 뭉치가 눈에 띄었다.

"가위질 해 본 적 있니?"

"아니오."

"그럼 손가락을 움직여 봐.손의 근육이 정상이니 넌 가위질을 잘 할 수 있어."

나는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신영이를 북돋웠다.

신문을 펼친 뒤 먼저 큰 사진부터 오리도록 시켰다. 직선은 제법 오리는데 곡선 부분은 쩔쩔맸다. 다행히 참을성이 있어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사진 오려내는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나자 조그마한 것까지 잘 잘라냈다. 나는 다음에는 신문 광고 문구를 글자의 크기까지 같게 공책에 그대로 옮겨 쓰도록 했다. 이 활동은 시간이 걸려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도 하도록 권했다.

신영이의 NIE 공책이 두꺼워질수록 수업시간에 눈빛이 더욱 빛났다. 그리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버릇이 생겼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그리워 나를 찾은 학생에게 약간의 애정을 기울인 것뿐인데 그 변화는 놀라웠다. 앞으로 신영이의 높아진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무슨 공부를 시켜야 할지 은근히 고민된다.

본지 NIE 연구위원·인천 부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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