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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경제의 희망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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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초가 되면 누구나 희망을 품고 덕담을 나누며 옛일을 돌아볼 때도 무언가 좋은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 글 또한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경제문제로 고생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 지금이 외환위기 때만큼이나 어렵다는 소리도 높다. 그때 말고도 국민이 경제적 고통과 불안에 떨었던 적이 또 있었다. 꼭 4반세기 전인 1980년. 정치적 혼란에다 제2차 석유파동과 흉작이 겹쳐 한국경제는 60년대 개발정책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희한하게도' 바로 그때 이헌재 부총리와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도 보스턴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두 사람의 인재를 동시에 사귀고 관찰할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한 분씩 따로 만날 기회는 많았으나 셋이 자리를 함께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나이나 경력 아니면 술 실력의 차이 때문인지 당시 두 분 간에는 그다지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도 나서서 그런 자리를 자주 주선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부총리야 그때나 지금이나 명성이 자자했던 재사여서 밝혀진 일화만 해도 너무 많으니 더 쓸 얘기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반면에 이 위원장은 숨겨진 진주같이 사귈수록 진가가 나타나는 학자다운 학자였다. 공부를 깊이 하면서도 워낙 사람이 부드럽고 겸손하고 진솔해 많은 사람이 그 인품에 끌렸다. (솔직히 말해 이분들에게 개인적 신뢰와 호감을 갖게 된 이유 중의 또 하나는 두 사람 다 달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런 재목들이 경제를 운용하는데도 지난해 우리 경제는 부진했고 위기감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표상으로는 5%에 가까운 성장이었지만 정책의지와 별 상관이 없는 수출이 효자 노릇한 덕분이었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제로성장으로까지 떨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게 누구 책임인가? 정치권에도 작지 않은 책임이 있지만 큰 부분은 역시 경제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의 몫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 이 부총리와 이 위원장 간의 불화설이다. 이런 얘기가 부각되다 보니 정부 정책에 혼선이 생긴 것으로 인식되기 쉽고 경제환경면의 불확실성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본인들은 부인하고 있다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그렇게 비치고 있으니 걱정이다.

행정부 내에는 정통 관료들과 386 및 개혁파 학자들이 동거하고 있어서 때로는 이견과 불화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그러나 정책입안 과정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방향이 결정되면 적어도 행정부 내에서는 한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특히 경제가 어렵고 사소한 일에도 경제주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양대 진영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는 두 사람 간에 이 문제에 관한 협의나 조율이 없었다는 점은 반성해야 할 일이라 본다. 시급하게 인식하고 시정해야 할 일은 자신들의 휘하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이 실력.경험.도덕성 등을 따져 상대방을 인정치 않고 비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아직은 경제가 어렵고 전망도 어둡지만 희망의 싹이 보이기도 한다. 대통령부터 올해는 경제회복에 정진할 뜻을 밝히고 있다. 부총리와 위원장이 합심해서 잘 보좌한다면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도 같다. 어려웠던 때 이국 땅에서 공부하며 나라를 걱정했던 두 사람이 이제부터라도 힘을 모아 경제를 회생시킴으로써 개인의 명예를 지키고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