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한반도 발언권 확대'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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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5~26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남북, 미·중·일·러간 6자회담 제의다.

이번 협의가 양측간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 날짜를 잡지 못한 가운데 일본이 북한에 6자회담 카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6년 이래 수차례에 걸쳐 남북, 미·중간의 4자회담에 일·러가 참가하는 6자회담 구상을 밝혀왔으나 이를 북한에 직접 타진한 것은 처음이다. 한반도 문제가 남북, 북·일, 북·미대화라는 양자구도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 6자회담이라는 다자 접근법을 들고나온 것도 이채롭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의 다자 접근법은 북한이 대화의 문을 걸어 잠갔을 때 등장한 단골메뉴였다.

그런 만큼 일본의 6자회담 제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이를 우리 측에 사전에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이번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다룬 4자회담의 확대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 측 제의는 전체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발언권 확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북 경수로 건설비 분담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개입의 끈을 확보한 일본으로선 자국이 포함된 상설 대화체가 생기면 더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은 한걸음 더 나아가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 안보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생각도 있다는 풀이다.

일본은 6자회담을 북·일 수교협상을 보완하는 대화체로 활용할 뜻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최대 현안으로 삼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의혹은 양자 협의에서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꼴인 만큼 다자 대화체의 틀 속으로 끌어들여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측면이 있다.

실제 일본은 미·중·러·유럽연합(EU)에 납치문제에 대한 중재를 요청해왔다. 일본의 안보와 직결된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도 다자 대화체에서 협의해야 부담이 적다. 일본의 6자회담 제의는 북한이 최근 물가인상을 비롯한 경제 개선조치를 취한 것과도 맞물려 있다는 지적들이다.

북한이 경제개선 조치의 성공을 위해 공급량을 늘려야 하는 만큼 북한이 다국간 동시대화를 선호할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6자회담에 적극적인 러시아가 최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회담 제의의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6자회담의 실현가능성은 작다. 먼저 북한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일과 수교하지 않은 상태에서 6자회담에 들어가면 북한에 대한 압력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도 한반도에서의 일·러 영향력 확대를 반길 리가 없다. 우리 정부도 남북간 대화·교류가 뚫린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전망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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