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험난한 하이닉스의 항로 홀로 서든 팔리든 빚탕감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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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구조조정특별위원회가 다음달 중에 열린다.

이 회의에서 하이닉스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주간사인 도이체방크는 채무조정·사업분할 등 구조조정 방안을 설명할 예정이다. 도이체방크는 석달여 동안의 작업 끝에 마련한 '하이닉스 구조조정 초안'을 최근 외환은행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의 진로와 관련해 현재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살펴본다.

◇빚 탕감은 생존의 '필요조건'=채권 금융기관들이 신규자금을 대지 않겠다고 버틸 경우 하이닉스가 살아남는 길은 몇가지로 좁혀진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반도체값 상승이다. D램 가격은 2000년 4.93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1.88달러로 곤두박칠쳤고 올들어서는 2달러선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외환은행 황학중 부행장은 "반도체 수요가 늘어 4달러선만 회복한다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값이 올라 외자유치나 증자가 이뤄진다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채권단이 이런 요행을 기대하며 하이닉스를 처리할 수는 없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빚을 깎아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각을 하든 자체 정상화를 하든 공통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채무조정이므로 미리 채무조정을 해 하이닉스가 이자를 한푼이라도 아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빚을 깎아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조합이 있을 수 있다. 일부에서 거론한 무담보채권을 50% 감면하는 방안은 지난 4월 마이크론과 매각협상을 벌일 때도 나왔다. 무담보채권 3조5천6백60억원(3월 말 기준)의 절반인 1조7천8백20억원을 깎아주자는 내용이다.

이는 마이크론에 매각하려고 했을 때 채권단이 해주겠다고 한 채무감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하이닉스측의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빚 탕감 문제는 제2금융권의 반발 등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수자를 기다리며 연명=채권단 일각에서는 무담보채권의 탕감 비율을 70% 이상으로 현실화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대손충당금을 올해 말까지 1백% 쌓을 예정이므로 신규 지원은 못해도 빚 탕감 문제는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담보채권의 회수비율은 많아야 30%이므로 70% 이상을 탕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이닉스는 빚을 깎아주면 1~2년은 연명할 전망이다. 하이닉스 측도 현재 지고 있는 빚을 끌고 가더라도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해외 반도체업체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하이닉스가 버틴다면 인수·합병을 포함한 전략적 제휴를 제의하는 곳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마이크론만 하더라도 지난 3~5월 2천4백20만달러의 적자를 내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매각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마이크론의 애플턴 회장은 최근 협상 재개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마이크론 주가가 폭락해 하이닉스를 인수할 만한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업체가 인수하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크지 않은 편이다. 반도체 업체들의 현금 동원능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이닉스를 팔면 마이크론이 제시한 가격(38억달러) 이상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자동차 매각을 보더라도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2차 입찰에서 낸 가격은 1차 때의 절반도 안됐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하이닉스 처리는 정상기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해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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