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등 개인통신 기록 일정기간 보존" EU 사생활 침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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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럽연합(EU)이 15개 회원국 국민들의 e-메일과 전화통화 등 개인통신 기록을 정부와 수사기관이 열람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보존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다음달 EU 회원국 대표들의 투표를 통해 도입 여부가 결정될 이 법안은 '이동통신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업체들은 EU 주민들이 주고 받는 모든 e-메일과 전화통화·팩스 기록을 최소한 1년 동안 의무적으로 보관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지가 20일 보도했다.

보존대상 기록은 통신의 출처·대상·시간과 통신수단 가입자들의 개인적 자료 등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 기록들은 중앙컴퓨터 시스템에 저장돼 모든 EU 회원국 정부와 정보·수사기관들이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유럽의 인권단체들은 "가장 위협적인 사생활 침해"라며 "EU가 주민 전체에 대한 일괄감시체제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유럽의 학자들도 "범죄소탕을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어차피 테러범이나 범죄자들은 일회용 휴대전화를 이용하거나 공유 계정의 e-메일로 연락하기 때문에 이런 법안은 범죄예방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한 인권침해 감시기구 '스테이트 워치'는 "정부가 통신기록을 열람하게 된다면 통신내용 자체도 도청·감시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법안은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테이트 워치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각 개인은 자신의 정보를 이용한 EU 당국에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보존된 자신의 통신기록이 정확한지를 확인할 권리도 없으며▶지정된 보존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삭제 여부를 알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EU 관계자들은 "이번 계획은 EU 내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마약밀매·인종차별·항공기 납치 등 중범죄를 효과적으로 수사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개인정보의 비밀은 철저하게 보호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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