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의'減稅 연기'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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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백50년 만의 대홍수를 겪고 있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19일 수해복구 대책을 발표했다. 수해가 극심한 엘베강 유역 옛 동독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70억유로(약 8조2천억원)를 지원하고 교통예산 10억유로를 긴급 복구비로 전용한다는 내용이다.

복구대책을 발표하면서 그는 예상 밖의 엉뚱한 방침을 밝혔다. 수해복구비 마련을 위해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던 2단계 세제개혁을 1년간 연기한다는 것이다. 슈뢰더 정권의 2단계 세제개혁은 면세점을 높이고 기본세율을 인하하는 등 세금인하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국가의 당면과제인 수해복구를 위해 국민 누구나가 반기는 세금인하 계획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때인가. 다음달 22일로 예정된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둔 시점이다. 게다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슈뢰더의 재선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지난 1월 에드문트 슈토이버 바이에른 주지사가 기민·기사당 총리 후보로 선출된 이후 사민당의 인기는 한번도 기민당을 앞선 적이 없다. 선거만 생각한다면 있던 세금도 깎아줘야 할 판이다.

홍수가 슈뢰더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기는 하다. 환경문제가 다시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환경보호에 앞장서온 현 사민·녹색당 연정(政)이 아무래도 득을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홍수 이후 실시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사민당은 기민당에 여전히 4~5%포인트 뒤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좌파진영의 표를 의식한 이라크전 불참 선언으로 슈뢰더는 미국은 물론 독일 내 우파들로부터도 '유럽의 관례를 깬 독불장군식 외교'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세금감면 유예라는 '표 날아가는' 선택을 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른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상한선(3%)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로서는 엄청난 '도박'임에 틀림없다.

당장의 인기보다는 국가경영의 정도(正道)를 택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고도의 선거전략이란 해석도 있다. 한달 뒤 총리를 그만 두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 경영은 제대로 하겠다는 용단이라는 시각과 선거용 승부수란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철만 되면 온갖 선심행정이 난무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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