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보수 盧-진보 鄭-중도 지지자 이념성향 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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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 이념에 따른 후보 지지는 주로 서구 정치에서나 발견되는 특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초 중앙일보의 이념 성향 조사에서는 한국에서도 그러한 관계가 대체로 확인된다.

앤서니 다운스는 "유권자는 자기와 이념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정당을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중앙일보-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 고려대교수)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념 성향과 후보 지지 간에 매우 흥미로운 관계가 발견된다. 유권자들이 보는 이회창(會昌)후보와 노무현(武鉉)후보의 이념적 이미지는 상호 대립적이다. 즉 이회창-보수, 노무현-진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확인된다.

이런 이념적 이미지는 두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성향과도 맞아떨어진다. 후보 지지자들은 보수 성향을 띠는 반면, 후보 지지자들은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들 후보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이념적 위치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념적으로 더 극단적이라고 평가한다. 후보는 후보 지지자보다 더 보수적이고, 후보는 후보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강한 이념적 이미지는 결국 두 후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념적 지지층을 넘어 지지 폭을 넓히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점은 후보에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정몽준(鄭夢準)의원은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도 지지자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적이라는 것이다. 재벌가 출신이면서도 진보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변혁의 기대감 때문으로 보인다. 또 지지층이 보수와 진보 양쪽에 모두 걸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지 폭이 넓다는 점에서 장점이고, 지지자 구성이 이질적이라는 점에서는 단점이다. 그만큼 결속력이 떨어질 수 있고, 대선 경쟁이 이념적으로 양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거나, ·후보가 좀더 중도적으로 선회하면 鄭의원의 지지는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가 온건화를 통해 이념적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면, 鄭의원은 오히려 자기 색깔을 갖는 독자적 지지층 마련이 필요한 셈이다.

다운스는 양당 경쟁을 전제로, 이념적으로 중앙을 장악하는 후보가 승리한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관심이다.

<공동참여 교수>

강원택(숭실대·정치학)

김주환(연세대·언론학)

이내영(고려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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