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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처녀 같은 量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인슈타인은 산책 중 갑자기 동료 물리학자에게 "우리가 보는 동안에만 달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말로 믿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산책하는 내내 물리학에서 '존재'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에 대해 토의했다. 아인슈타인이 달을 이야기한 이유는 양자계의 측정에 대한 코펜하겐 학파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양자역학의 고유한 특성은 양자계에 대한 측정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양자계의 상태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잠재돼 있는 중첩상태다. 이 중첩상태에 대해 측정을 하면 양자계는 그 중의 어느 한 상태로 옮아가게 되고 나머지 다른 상태에 대한 가능성은 소멸된다. 마치 야구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병살타에서부터 홈런까지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공을 치는 순간 그 중의 어느 한 상태만이 실현되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는 실험적 사실이므로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코펜하겐 학파도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타자가 공을 치기 전에는 어떤 타구가 나올지 모르듯이 양자세계에서도 측정을 하기 전에는 어느 대안이 실현될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코펜하겐 학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각 타자의 타율이 안타의 확률을 말해주듯이 양자역학은 각각의 대안이 실현될 수 있는 확률을 제시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양자역학 이론이 완벽하다는 것이 코펜하겐 학파의 생각이었다.

이 점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견해를 달리했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달은 그 자리에 떠있듯이 사물은 관찰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신의 내재적 특성에 따라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아인슈타인의 실재성(Reality)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리이론은 마땅히 이러한 실재성을 완벽하게 드러내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불완전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대안 중 어느 하나로 측정 결과가 귀착되는 것은 양자계의 내재적 특성 때문일 텐데, 그 특성을 기술하지 않고 단지 확률만을 제시하는 양자이론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이론이 갖춰야 하는 조건 중의 하나가 실재성이므로 양자이론이 불완전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코펜하겐 학파의 중심이었던 보어는 자신이 하던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양자역학의 완벽성을 제시하려고 했다. 어느 주장이 정당한지는 50여년이 지난 다음인 1982년에야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이에 의해 아인슈타인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이론은 모순에 부닥치며 양자역학의 기술이 정당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는 양자의 세계를 아주 수줍은 처녀에 비유한다.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행동이 변하는 것이 양자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미래의 세계가 여러 가능성을 담지한다는 것은 양자세계만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양자와 달리 그 중의 어느 한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가능성을 실현시키느냐는 것은 현재의 조건과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세계 속에서 오늘 우리는 우유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독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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