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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 노선투쟁 격랑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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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당 의장직을 사퇴한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左)이 3일 오전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해 천정배 전 원내대표와 당직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조용철 기자

열린우리당이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이부영 의장은 3일 전격 사퇴를 선언하며 "여야의 과격노선과 과감한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과 대화.타협의 노선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표적은 당내 강경파다. 이들을 투쟁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의 노선투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여당 지도부는 이날로 공백상태가 됐다. 이미경.김혁규.한명숙 상임중앙위원도 사퇴했다. 당 중진들의 협의체인 기획자문위원회(위원장 임채정)도 해산키로 했다. 집권당의 권력 중심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전선은 4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회를 누가 주도하느냐를 놓고 형성되고 있다. 그 분수령은 비대위 구성을 논의할 5일 의원총회와 중앙위원 연석회의다.

가능성은 두 갈래다. 중진들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가 비대위를 주도하거나 강경파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다.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여권 내부의 역학과 대야 관계가 변화할 것이다.

당내엔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이부영 전 의장 측에선 "전략도 없이 투쟁만 하자는 세력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의원들이 깨닫게 하려면 충격이 필요해 사퇴했다"고 말한다.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강경투쟁만 부르짖는 '맹동(盲動)주의자'들의 발언권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원식 의원은 "개혁입법 완수에 실패한 것은 강경파 때문이 아니라 좌고우면(左顧右眄)한 절충주의 세력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당 문제엔 관여하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도 노선투쟁이 격화하는 배경이다. 그는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당정 분리 원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정무적 사안은 당에 믿고 맡기는 게 원칙"이라며 "당정 분리 원칙은 대국민 약속일 뿐 아니라 정치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했다.

①보안법 등 쟁점법안 향배=당 운영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전망이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보안법 폐지 후 형법 보완이라는 당론을 고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져보면 지도부 총사퇴도 여기서 비롯됐다. 강경파가 비대위를 장악하거나 1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후보를 당선시키면 2월 국회부터 당론 관철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온건파의 초선 의원(서울)은 "국민이 보안법을 놓고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②대야관계는 어떤 방향으로=강경파나 온건파를 막론하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대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경파는 "대화와 타협에 나서되, 안 될 경우 비상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야 한다"(수도권 초선)는 입장이다. 반면 온건파는 "야당의 태도에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나 마지막까지 타협하는 것이 여당이 살 길"(충청권 초선)이라고 말한다.

③당권.대권 둘러싼 역학관계=비대위 구성(5일)→원내대표 경선(1월 말)→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4월)를 거치며 세력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당권파(정동영 통일부 장관 중심), 재야파(김근태 복지부 장관 중심), 개혁당파(유시민 의원 등)와 친노직계 등이 혼재해 있다. 서울의 재선 의원은 "노선 논쟁이 본격화하면 각종 경선이 권력투쟁의 성격을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정치연구회와 '안개모'등도 적절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④경제 우선 국정기조 변화는=최근 온건한 주장을 펴 온 송영길 의원은 "새 지도부가 노 대통령의 경제회복과 통합정치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장선 의원은 "새 국정기조 완수를 위해 여야가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강경파 쪽 이야기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경제를 살리되 이와 별도로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대통령 취임 2주년(2월 말) 이전에 개혁 입법은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는 기류도 있다.

김정욱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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