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하는 한나라 … 입 다문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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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8 재·보선에서 각 당은 승패만큼이나 표정도 엇갈렸다. 한나라당은 환호와 안도로 들썩였고, 민주당은 한숨과 낙담이 짙게 깔렸다.

◇"내각제 같으면 정권교체"=오후 9시15분 한나라당사 상황실에서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는 환한 얼굴로 "우리 당에 막중한 신임을 보내주신 데 대해 뭐라 감사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국 13곳 중 10곳에서 승리가 확정되거나 확실시된 뒤였다. 후보는 개표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너무 웃으면 오만하다고 해"란 농담도 했다.

그러나 그전엔 기쁨을 아꼈다.오후 6시 TV 3사가 한나라당의 압승이란 출구조사 결과를 알릴 때도 "예상치인데…"라고 입을 다물었다. "박수를 쳐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도 "된 다음에…"라고 손사래쳤다.전날까지 고전 중이라고 알려진 서울 영등포을·부산진갑·안성 등에서 앞선다는 소식에 "괜히 걱정했네"란 말도 했다.

서청원(徐淸源)대표 등 다른 당직자들은 내내 한껏 즐거워했다. 상황실은 "와"하는 함성과 박수로 가득찼다. "내각제 같으면 정권교체된 것" "민주당이 다시 호남당이 됐다" "병풍(兵風)이 허풍됐다"는 소리도 나왔다.

오후 10시20분쯤 북제주에서 양정규(正圭)후보가 극적 역전승을 거두며 한나라당의 11번째 당선자로 확정되자 다시 함성이 터졌다. "두목(당선자 별명)이 해냈다"는 감탄도 나왔다. 徐대표는 "대미를 장식했다"며 기뻐했다.

◇"상황실이 아니라 고문실 같다"=방송사 출구조사가 발표된 오후 6시 여의도 민주당사 7층. 흰색 점퍼를 입은 노무현(武鉉)대통령후보와 한화갑(韓和甲)대표는 입을 꽉 다물었다.

잠시 후 韓대표는 "새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도덕성 검증을 장상(張裳)총리서리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시효없이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후보는 목이 타는 듯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 10분 만에 "나가서 편안하게 있고 싶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보는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제가 뭐…여긴 상황실이 아니라 고문실 같다.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8층 후보실로 향했다.

후보는 계단에서 다시 기자들을 향해 "내가 (상황실에서)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것은 언제나 그래왔듯 운명에 도전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제발 따라오지 말라"며 후보실 문을 닫았다.

후보와 韓대표는 이날 오후로 예정했던 회동 계획을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취소했다.

개표 결과가 드러나면서 상황실에 모여 있던 당직자들이 일찌감치 당사를 떠나버려 썰렁했다.

◇신당론 급물살 기대=한나라당과 민주당 외부의 정치권 인사들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라며 향후 정국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는 모습이었다.

이한동(漢東)전 총리는 외부에서 재·보선 결과를 전해 들었으나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전 총리 측은 민주당의 패배로 신당론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하며 향후 활동 방안을 점검했다.

신당에 관심을 보였던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대표도 자택에서 선거 결과를 지켜봤으나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택에서 개표 결과를 지켜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는 "투표율이 너무 낮아 대표성이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서울 종로·금천,마산 합포 등 세 곳에 후보를 낸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이어 셋째로 높은 정당지지도를 기록했던 6·13 지방선거와 달리 소속 후보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다소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고정애·서승욱·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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