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 자유화 여파 러시아 부동산 투자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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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모스크바 변두리의 낡은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미하일 부디얀스키(35)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다섯 식구가 살기에 비좁은 방 두칸짜리의 20평 아파트를 벗어나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기는 것이다. 반도체 개발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5년 전 보다 높은 수입을 올릴 요량으로 외국인 전문 여행가이드로 전직한 뒤 한푼 두푼 열심히 저축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아파트 가격이 뛰어오르는 속도를 예금 통장 잔고가 불어나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부디얀스키의 볼멘 소리처럼 모스크바는 한창 부동산 붐에 휩싸여 있다. '프라다자(판매 중)'란 간판을 내건 복덕방이 거리마다 성업 중이다. 모스크바 대학 인근 레닌스키 대로의 3~4평짜리 원룸 아파트의 월세는 1만루블(약 42만원)대로 러시아 근로자 평균 월급의 세배가 넘는다.

지난해 이맘 때에 비해 두배 가까이로 올랐다. 10%대로 낮아진 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부동산의 폭등세를 짐작할 수 있다. 아파트 매매가는 ㎡당 3만루블 수준으로 30평 아파트는 한국 돈으로 억대를 호가한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시내 중심가의 금싸라기 땅이나 포코로프스키 언덕 등 신흥 빌라촌은 아파트 월세만 10만루블을 훨씬 넘는다"며 "부동산 가격만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의 부동산 붐은 최근 몇년새 러시아 경제가 좋아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토지거래 자유화의 여파도 크다. 집권 후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도시의 주거·상업지역 토지 매매를 자유화하는 법률을 발효시켰다.

1993년에 공포된 러시아 신헌법에 토지 사유화가 명시돼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매매가 불가능했다. 공산당과 보수파의 저항으로 후속 법률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농지거래법도 발효됐다. 광활한 러시아 영토의 4분의1에 가까운 농토 4억여㏊가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거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후 80여년 만의 일이다. 언론들은 이 법을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91년 자본주의가 도입됐지만 아직도 국가 또는 지방정부 소유지가 많고 민간소유로 넘어간 농지도 여전히 협동조합이나 공동소유 형태가 많아 소비에트 시절의 집단농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 당국은 "농지개혁과 함께 이윤동기가 촉발돼 농업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농지개혁 시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거·상업용지와 마찬가지로 농지 가격도 치솟아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농지 소유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경제신문 기자 코마로프 안드레비치는 "러시아 농민들은 땅을 살 만한 돈도 없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어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스크바=정효식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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