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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야쿠자 닮아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조직원 30여명을 거느린 중간급 폭력조직인 E파는 최근 '생존 방식'을 바꿨다. 유흥가 상납금으로 버텨왔던 이 조직은 광고대행사와 건설회사를 설립, 합법화를 시도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조직이 폐기물 재활용·연예 기획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조직범죄를 연구하고 지난 3월 돌아온 서울 서대문경찰서 박건찬(朴建燦)경정은 "일본 야쿠자처럼 기업형 수익모델을 추구하거나 해외 폭력조직과 연계해 국제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국내 폭력조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합법화·지능화=국내 폭력조직들은 1990년대 이후 야쿠자를 모델로 기업화하고 있다.

충청권 O파 두목 金모씨는 98년 부도 위기를 맞은 지역신문을 인수하고 이듬해 모 경기단체 회장으로 취임하는 등 버젓이 사회 명망가로 행세했다.

그러나 金씨는 지난해 4월 성인오락실로부터 금품을 뜯어낸 혐의로 지명 수배돼 도피 중 숨졌다.

일부 폭력조직들은 일본 자금을 바탕으로 파이낸스사 등 소규모 금융기관에 손을 대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폭력 조직의 8%가 고리대금업체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밖에 평상시에는 간부급 중심으로 슬림화해 있다가 사업권 다툼 등 '일'이 있을 때 신흥조직에서 조직원들을 계약에 의해 빌려다 쓰는 이른바 '폭력복덕방'까지 생겨나고 있다.

◇국제화·야쿠자 연계=국내 폭력조직은 교민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폭력조직의 결성을 추진하거나 현지 한국인 갱단과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경찰은 국내 폭력조직이 미국·일본·호주·중국 등 미주와 아시아 등 14개국에 거점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했다.

부산 D파의 조직원 2명은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 금품을 받고 현지 교민들의 이권다툼에 개입, 폭력을 행사하다 지난 3월 강제 소환됐다.

일부 국내 조직은 야쿠자로부터 불법 자금·조직 관리 기법을 전수받았다.

92년 '폭력단 대책법'이 제정된 뒤 일본 내에서 활동이 어려워진 야쿠자 조직들은 한국을 새로운 무대로 선택하고 한국계 야쿠자 조직원을 매개로 연계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초 일본 야쿠자 조직원 20여명이 한꺼번에 관광 명목으로 국내에 들어와 관계당국이 긴장하기도 했다.

◇배경·대책=박건찬 경정은 "국내 폭력조직들은 주요 자금원인 향락·카지노 사업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심해지자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한·일 폭력조직의 연계로 야쿠자의 검은 돈이 국내 경제에도 적잖은 해악을 줄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 경시청은 97년 말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금융업에 유입된 일본 자금이 야쿠자와 관련이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범죄 전문가들은 ▶국제공조 수사를 통한 단속체제 강화▶폭력조직의 자금 흐름을 차단하는 경제수사기구 설립▶새로운 수사기법 개발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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