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壽 경제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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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직업에 따라 평균 수명의 격차도 크다. 경제활동을 해온 남성들의 수명이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하며 평생 직장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 비해 14년 이상 길다는 조사결과가 몇달 전 국내 한 대학의 조사결과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여러 직업군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수명은 의외로 길다. 끊임없는 연구와 세기적인 논쟁을 일으키며 독창적인 경제이론을 발전시켰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더욱 더 오랜 인생을 살았으며 마지막 삶을 학문으로 불태운 점이 특징이다.

나흘 전(7월 31일)에 90회 생일을 맞은 밀턴 프리드먼은 아직도 정정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그를 백악관에 초청해 장수를 축하하고 그가 주창해온 자유주의 이론에 찬사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 76세인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쭈글쭈글해진 프리드먼의 손을 붙잡으며 그의 건강을 빌었다.

1988년에 시장 자원의 효율적 이용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모리스 알레는 프리드먼보다 한살 더 많은 91세, 또 경제학과 법학을 접목시켜 체계화한 공로로 91년 같은 상을 받은 로널드 코스는 92세로 생존해 있다. 80대의 수상자도 적지 않다. 폴 새뮤얼슨(미국·87세·70년 수상)과 로런스 클라인(미국·82세·80년 수상), 프랑코 모딜리아니(미국·84세·85년 수상) 등 6명이 그들이다.

이들에 비하면 현재 70대인 7명의 수상자들은 아직 중년이며 60대 6명은 청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이 만들어진 69년 이래 전체 수상자 49명 가운데 이미 사망한 21명의 평균 수명은 83.7세였으며 생존해 있는 28명의 평균 나이는 73.5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장수를 누리는 특별한 이유나 비결에 대한 조사는 아직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각종 위기의 뒤에 숨은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열정에 파묻혀온 점이 공통점이다.

3년 후에 90세를 내다보는 새뮤얼슨은 지금도 한국 경제발전 등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최근에는 아르헨티나 전 경제장관의 구명운동에까지 발벗고 나섰다. 이제 막 90세가 된 프리드먼은 70년대에 칠레의 시위대로부터 "독재를 지지한 자유주의의 돈키호테"라고 매도돼온 이래 수많은 파란을 겪었다. 장수를 누리는 이들은 한때 각국 정부나 통치자의 경제자문역 또는 주요 관리직을 지낸 적은 있으나 모두들 권력과 거리를 두었으며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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