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후계 물망 쿠바 前외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로베르토 로바이나 전 외무장관(46·사진)이 당 정치국원직에서 최근 축출됨으로써 독자행보를 보이는 2인자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카스트로 정권의 속성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로바이나에 대해 "혁명정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 정치국원과 중앙위원직 등 당직 일체를 박탈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2일 보도했다.

20대 초반, 쿠바 청년 공산당 연맹 회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로바이나는 쿠바 공산당 정치국에서 요직만 거치며 승승장구한 끝에 1993년 37세의 나이에 외무장관에 임명됐다. 당내 개혁파의 대표적 인물인 그는 자신감 넘치는 언행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들의 인기를 모았다. 외신들은 그를 '떠오르는 별'로 부르며 카스트로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아왔다.

그러나 로바이나는 99년 뚜렷한 이유 없이 외무장관직에서 전격 해임된 데 이어 3년 만에 당적마저 박탈당함으로써 순식간에 '떨어진 별'이 됐다. 카스트로 의장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은 1일 당 간부들에게 배포한 비디오 테이프에서 "로바이나가 독자적인 행동을 거듭했으며, 언젠가는 쿠바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암시가 담긴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축출 배경을 밝혔다.

2인자로 거론되다가 하루 아침에 쫓겨난 사람이 로바이나가 처음은 아니다. 청년 당원 출신으로 항공 최고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가 87년 공금 유용혐의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루이스 올란도 도밍게스 등이 모두 로바이나와 같은 운명을 겪었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