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술 혁신 주도하는 이민자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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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30면

국제 이민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2년 유엔이 발간한 ‘국제 이민’이라는 문헌에 따르면 세계인구의 3%인 1억7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외국에 영구 정착했다. 최근 유럽에서 이룩된 인구 증가의 대부분도 이민자 유입의 결과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전통적으로 이민자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민 문제에 관심이 높았던 미국과 같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이민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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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경제학자들은 이민이 이민 유치국의 노동 시장과 공공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얼마 전엔 이민이 물가 수준, 주택 시장, 범죄 등과 같은 토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는 고숙련 이민이 이민 유치국의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별로 없었다.

이러한 관심 부족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미국의 기술 개발과 상업화에 이민자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중에서 대졸자의 24%, 박사학위 소지자의 47%가 이민자들이다. 이민자들은 또한 1995년 이래 미국 내 과학자·엔지니어 수의 순증가(純增加)에서 반 이상을 차지했다. 기술혁신과 성장이 밀접한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민과 기술혁신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일차적인 과제다. 필자들은 기 발표 논문인 ‘기술혁신의 공급측면: 취업비자 개혁과 미국 기술 혁신의 혈연적 배경’에서 취업비자(H-1B) 발급량의 대규모 변화가 미국의 기술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혔다. 우리는 취업 비자 허가 건수가 증가하면 발명이 증가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증가는 주로 이민자들의 직접적인 기여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증가가 기존의 미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취업비자 발급 규모가 미치는 영향은 지리적으로 다르게 나타났다. 발급량이 늘면 취업비자 소지자에 대한 의존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도시들보다는 높은 도시들에서 기술혁신이 증가했다. 이민자의 영향이 지역적으로 편중됐다는 것은 미국에서 혁신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과도 관련 있다.

취업비자는 미국의 과학·엔지니어링, 특히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일하려는 일시적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발급받는 비자다. 영주권을 얻지 않는 한 취업비자를 받아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6년이다. 이 비자 프로그램은 주로 인도인과 중국인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매년 발급되는 비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취업비자 발급 상한선에는 시기별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취업비자 발급량에 대한 뜨거운 찬반양론이 진행됐다. 95년 이래 취업비자에 대한 3000편 이상의 논문이 나왔다. 첨단기술 회사의 중역들은 취업비자를 보다 많이 발급해야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기술혁신과 성장을 자극하며, 기업 활동을 외국으로 이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종종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반대파에서는 취업비자 프로그램으로 미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임금이 낮아지며, 현장직무교육(OJT)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필자들은 취업비자 발급량이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특허 기록에 나와 있는 발명자들의 이름으로 가능성이 높은 혈연적 배경을 파악했다. 예를 들면 이름이 ‘굽타’라든가 ‘데사이’인 발명가들은 앵글로색슨 사람이거나 베트남 사람일 가능성보다는 인도인일 가능성이 크다. 혈연적 배경이 파악되면 해당 지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미국 내 특허 건수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조사해본 결과 취업비자 발급이 증가하면, 특히 취업비자 소지자에 의존하는 도시에 살고 있는 인도인·중국인의 발명 특허 건수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취업비자 발급이 늘어도 앵글로색슨계의 사람들을 비롯한 비(非)이민자들이 받는 영향은 미미했다. 앵글로색슨계는 미국 내 특허의 약 70%를 차지한다. 연구 결과 이민자 유입이 기존의 미국인들을 몰아낸다는 구축(crowding-out) 효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영입(crowding-in) 효과가 발견됐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다른 접근법을 사용한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특히 이민 관계를 직접 알 수 있는 현인구조사(CPS)에 나타난 과학자·엔지니어 고용 데이터를 분석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특허 자료와 CPS 자료를 비교해 보니 이민자가 기술혁신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취업비자 발급 상한선 증감의 영향을 받는 이민자와 비이민자 간의 질적인 차이와 무관했다. 기술혁신은 과학자·엔지니어의 수가 증가하는 데 따라 발생하는 이득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연구를 위해 혁신 기업들 간의 차이를 계량화하기도 했고 캐나다 특허 기록을 분석해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기도 했다. 취업비자와 관련 없는 사회 현상의 영향으로 우리가 발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들은 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이 미국 내 기술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상당수 연구자는 이민자들이 비이민자 과학자·엔지니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연구자는 그러나 비이민자들이 외국인 학생 때문에 대학원, 특히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며 노동력 공급 증가 때문에 졸업 후 낮은 임금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의견의 불일치는 여론에도 반영되고 있다. 고숙련 이민과 취업비자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숙련 이민이 어떤 경로로 기술혁신과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자세하게 밝혀 내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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