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반라의 우즈에게 건넨 한마디 “Spa or swim?”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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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16면

골프 담당 기자는 참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좋다는 골프장은 다 가보고, 골프도 실컷 즐길 수 있으니까 말이죠.”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20>

이런 말 많이 듣는다. 부인은 하지 않으련다. 그런데 정말 좋기만 할까?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골프 담당 기자만의 고충도 있다. 몇 가지 덕목도 갖춰야 한다.

이를테면 골프 기자는 준비물을 잘 챙겨야 한다. 골프 대회를 취재할 때마다 수첩과 펜은 기본이고, 카메라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자외선 차단 크림도 필수다. 뜨거운 땡볕 아래 골프장을 돌아다니려면 물도 빠뜨리면 안 된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과 우비도 챙겨야 한다.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빼먹으면 그날은 무척 힘들다. 선블록을 빠뜨렸다간 얼굴이 벌겋게 익게 마련이다. 카메라가 없으면 갑자기 타이거 우즈를 만나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수년 전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즈와 맞닥뜨렸다. 그는 웃통을 벗은 반바지 차림이었고, 나는 취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반쯤 벌거벗은 우즈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꺼낸 말이 고작 이 한마디였다.

“스파, 오아 스윔?(스파를 했나요, 수영을 했나요?)”
골프 기자는 걸음도 빨라야 한다. 골프 취재는 야구나 축구와 달라서 18개 홀은 물론 드라이빙 레인지와 쇼트게임 연습장까지 커버해야 한다. 선수들의 기자회견은 수시로 열린다. 최경주만 따라다니면 양용은을 놓치고, 타이거 우즈를 뒤쫓다 보면 필 미켈슨이 이글을 하는 장면을 놓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야구나 축구를 취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골프 기자는 참을성도 많아야 한다. 아들이나 딸뻘의 선수들이 종종 신경질을 부려도 인상을 쓰지 말고 웃어야 한다.

“김 프로님, 사진 찍게 포즈 좀 취해 주시죠.” “에이, 바빠죽겠는데….”
이렇게 퉁명스러운 반응이 돌아와도 골프 기자는 절대로 화를 내면 안 된다.
골프 기자는 예의도 발라야 한다. 어느 날 정치권의 고위층 인사가 경기장을 방문하자 골프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무전기를 든 경호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면서 외부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런데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이 난데없이 내게 물었다.

“볼펜이야, 카메라야.”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서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볼펜이란 취재기자를, 카메라는 사진기자를 뜻하는 말이란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머리끝까지 화가 뻗쳐 올랐지만 나는 꾹 참았다. 그러고는 예의를 갖춰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노트북인데요.”

150년 역사의 브리티시 오픈이 한창이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도 애로사항은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날씨는 추운데 길은 반대다. 왼쪽 길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데 렌터카 회사에선 내비게이션이 떨어졌단다. 인터넷 속도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역대 가장 많은 8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했는데 어떤 선수부터 만나봐야 할지 난감하다. 어젯밤 아내가 문자를 보내왔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데 혼자 가서 좋겠네.”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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