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상대편은 있지만 적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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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16면

남아공 월드컵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우리 팀이 16강에서 멈춘 것은 아쉽지만 멋진 월드컵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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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 모두가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처음 열린 월드컵을 유감없이 즐겼다. 우리 국민은 한국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늦은 밤이든 이른 새벽이든 불문하고 시청 앞 잔디광장, 삼성동 영동대로,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서 박수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우리 팀을 응원했다.

우리 팀이 경기하는 동안 중계방송을 시청하는 국민들은 남녀노소, 여와 야, 노사도, 지역주의도 없이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승리에의 염원을 모았다. 그 에너지가 우리 팀의 노력과 어우러져 원정 16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리라고 믿는다.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에게 외쳤다.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고. 나도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12일 새벽 열린 결승전은 극적이었다. 연장전에서 결승골이 나왔다. 스페인은 우승할 자격이 있는 강팀이었다. 네덜란드도 우승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불운했다. 준우승만 세 번째인 네덜란드 선수들이 낙담했음직하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그들의 침울한 표정을 비추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최선을 다한 패자의 품위를 발견했다.

본부석에 올라가 은메달을 받고 내려온 네덜란드 선수들은 양 옆으로 늘어서서 우승컵을 받고 내려오는 스페인 선수들을 맞았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박수를 치고, 스페인 선수들과 포옹했다. 이런 장면은 축구와 공통조상을 갖는 럭비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경기에서 이긴 팀 선수들은 도열해서 진 팀 선수들의 퇴장을 기다린다. 그러면 진 팀 선수들이 같은 모양으로 도열해서 이긴 팀 선수들의 퇴장에 경의를 표한다.

그뿐이 아니다. 럭비 경기장에는 샤워장이 하나뿐이다. 이긴 팀 선수들도 진 팀 선수들도 서로를 구분하던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한다. 몸을 부딪히며 격렬히 싸운 선수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깨끗한 몸에 양복을 걸친 뒤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신사로 돌아간다.

나는 네덜란드 선수들의 모습에서 스포츠 정신의 원형질을 본다.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편은 있지만 적은 없다. 럭비에는 ‘노 사이드(No Side)’라는 용어가 있다. 경기 종료를 뜻하는 노 사이드가 선언되면 승자나 패자 모두 친구가 된다. 노 사이드 정신에 투철한 선수들은 심판 판정 등에서 억울한 일이 있었더라도 경기가 끝난 후엔 묻어두는 것을 명예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로마법에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약속이 가장 잘 지켜지고 치열한 승부 끝에 승패가 갈리면 결과에 승복하며,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노 사이드 정신이고, 스포츠 정신이다. 우리는 진정 노 사이드 정신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스포츠의 노 사이드 정신이 우리의 삶 속에 구현되기를 희망한다. 월드컵에서 우리 팀 선수들과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와 즐거움을 주었다. 정치에서는 국민을 위한 여야 간의 상생의 정치, 기업에서는 노사 간의 화합의 노사문화가 이루어진다면 글로벌 시대에 세계와 경쟁을 해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강력하고 믿음직한 원동력과 추진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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