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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짜 점심’ 집착 말고 진짜 교육복지 고민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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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야당은 ‘무상급식(無償給食)’ 공약으로 6·2 지방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 “서민 세금으로 부잣집 자녀까지 거저 밥 주는 건 몹쓸 포퓰리즘”이라며 여권이 대응에 나섰지만 ‘공짜 점심’ 프레임의 힘이 훨씬 셌다. 그러나 야권 승리의 1등 공신 노릇을 한 무상급식 공약이 벌써 삐걱대는 조짐이다. 야당 지자체장과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취임 후 예산 부족이란 현실의 벽 앞에서 하나 둘 축소 또는 연기 방침을 밝히고 있다. 막대한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큰소리 떵떵 칠 때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었다.

“내년부터 초등학생 60만 명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여전히 고집하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학생 4만9000여 명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현재보다 무려 1700여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마련할 길이 마땅찮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예산 중 고정비용을 빼면 남는 사업비는 뻔하다. 이 돈을 무상급식에 왕창 털어 쓰고 나면 열악한 학교시설 개선 등 꼭 필요한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보궐선거로 당선된 이후 경기도는 무상급식 예산을 대폭 늘리고 그만큼 여타 사업비를 삭감하는 바람에 여러 학교가 교실 증축(增築)을 못 하는 등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한다.

돈이 무한정 많다면 모를까 너나없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우리 지자체의 현실을 고려할 때 재원(財源)의 효율적 배분은 불가피하다.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나눠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과연 야권의 주장대로 무상급식의 전면 확대를, 그것도 값비싼 친환경 식재료로 추진하는 게 가장 시급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급식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은 돕는 게 마땅하다. 이 지원 비율을 선진국 수준에 맞춰 소득 하위 30%대로 확대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만약 추가로 재원이 확보된다면 결식아동들이 방학과 휴일에도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는 게 더 급하다. 지자체별로 다르지만 방학이면 3000원 안팎의 식권 한 장 나눠주는 게 고작이다.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이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것이다. 학기 중 아침·저녁 무상급식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점심 한 끼 때운 뒤 종일 굶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고도 돈이 남는다면 급식의 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비타민·무기질 섭취가 힘든 빈곤층 자녀를 위해 야채·과일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유럽연합(EU) 국가들처럼 말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도 무상급식 전면 확대를 굳이 밀어붙인다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럴 경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소속 교사들도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펼치겠다고 한다. 더 이상 헛된 공약에 집착해 갈등을 초래할 게 아니라 진정한 교육복지(福祉)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