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성과급 두둑… 근무여건 좋아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정보통신기업에 9년째 근무해온 李모(38)차장은 최근 국내 대기업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가 당초 외국계 기업을 택한 이유는 연봉이 국내 기업보다 다소 많고 공정하게 실력을 평가하는 등 외국계 기업 특유의 근무 풍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실적 경쟁이 치열하고 고용 불안에 시달렸지만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복리·후생은 국내 대기업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주5일제 근무로 주말에 확실히 쉴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달 초 국내 금융권과 몇몇 대기업에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외국계 기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李씨는 마침 헤드헌터업체의 이직 제안이 들어오자 결심을 굳혔다.

요즘 李씨처럼 국내 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려는 외국계 기업의 우수 인재가 늘고 있다.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몰려가던 얼마 전과 사뭇 다른 현상이다.

미국계 기업 G사에 근무하는 申모(34)씨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한다는 프라이드가 거의 사라졌다"면서 "주변 동료들도 기회만 닿으면 국내 기업으로 옮기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헤드헌터업체 ㈜썩세서는 이달 들어 이직을 신청한 외국계 기업 출신 2백63명 가운데 40%인 1백5명이 국내 기업을 선호했다고 밝혔다.

올 1월에는 외국계 기업 출신 이직 신청자 2백50명 가운데 국내 기업을 택한 사람이 25명에 불과했다.

다른 헤드헌터업체인 IBK컨설팅측은 "외국인 업체 직원들로부터 받는 하루 30여통의 이직 신청 가운데 10여건이 국내 기업으로 이직을 희망하는 내용"이라며 "지난해만 해도 거의 느낄 수 없었던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침체로 외국계 기업의 고용 불안이 커지고 국내 기업들도 성과급제를 도입해 우수 인력의 임금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추진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IBK 컨설팅의 외국계기업 담당 신영화(35·여)이사는 "고용불안 등으로 이직을 망설이던 외국계 기업 직원들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계기로 국내 기업으로 옮기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계 정보통신업체 I사 인사부 관계자는 "직원들이 표나게 술렁이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지사만 별도로 복리후생 대책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고심 중"이라고 했다.

일본계 기업 D사에서는 최근 별도의 복리·후생 대책 대신 정시 퇴근을 엄격하게 실시하면서 휴일 당직근무를 없애는 차선책으로 직원들을 달래고 있다.

정용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