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V홈쇼핑 업체 외형 불리기 경쟁 판매 수수료 백화점 뺨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주부 梁모(31)씨는 지난 4월 TV 홈쇼핑 업체에서 29만원짜리 건강보조식품을 사고 사은품으로 '구치' 숄더백을 받았다. 그러나 숄더백이 진품이 아니라고 판단해 아예 물품구매까지 철회했다. 梁씨는 "회사 측은 진품이라 주장하지만 숄더백이 너무 조잡했다"고 불평했다.

TV 홈쇼핑 시장이 지난해 2조원에서 올해 4조원 규모로 급신장하면서 '부실'을 낳고 있다. LG·CJ39·현대·우리·농수산TV 등 5개 업체들의 외형 부풀리기 경쟁이 가열되면서 부작용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상품을 판매해주는 대가로 제조업체에서 받는 수수료가 최근 2~3년 사이에 유명 백화점 뺨칠 수준으로 높아졌다.

홈쇼핑 업체에 물건을 공급해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홈쇼핑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수수료가 올라가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면서도 "매장을 빌려주는 백화점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받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줄 사은품이나 경품을 제조업체가 제공할 것을 강요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수수료·사은품 부담 때문에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납품업체들이 사은품 등의 품질을 낮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연승 연구위원은 "홈쇼핑에서 납품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납품업체들은 제품 또는 사은품의 품질 수준을 낮춰 수익을 맞추려 들 것"이라며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수료에 거품 없나=홈쇼핑 업체가 납품업체로부터 받는 판매수수료는 평균 30% 내외다. 일부 패션류와 보석류는 40%까지 받는다. 의류업체 A사 관계자는 "할인점이 20~25%, 백화점이 30~35%인 점을 감안하면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는 홈쇼핑의 수수료가 지나치게 많다"며 "판매가격을 낮추고 싶어도 홈쇼핑 업체의 반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가전제품을 수입해 백화점·홈쇼핑 등에 납품하는 B사 관계자는 "백화점에 납품할 때는 대리점이 15% 정도의 마진을 챙기고 백화점이 10% 내외의 수수료를 받는다"며 "홈쇼핑은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직거래를 하는 데도 25%의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홈쇼핑이 백화점보다 더 비싼 수수료를 받는 것은 문제"라며 "수수료를 적정 수준으로 내려주면 그만큼 판매가격을 내릴 수도 있는데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은 최근 반품률이 높은 패션류를 제외하고는 판매수수료를 거의 올리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납품업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의류업체 C사 관계자는 "한 홈쇼핑에서 2년 전 27% 하던 수수료가 최근엔 35%까지 올라갔다"며 "홈쇼핑에 납품하는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기업이어서 끌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홈쇼핑 관계자는 "일부 품목의 판매수수료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마케팅 비용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유선방송 중계사업자의 홈쇼핑 의무방송 제한이 풀리면서 홈쇼핑 업체들이 특정 지역을 관장하는 중계사업자에게 매출액의 2~3%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평균 20% 안팎인 반품에 따른 물류비용과 무이자 할부에 따른 비용부담도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대학원의 이병태 교수는 "홈쇼핑이 백화점 등에 비해 중간 유통단계를 줄인 점을 감안하면 판매수수료 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라며 "5개 홈쇼핑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판매수수료를 높게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은 소비자 피해=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에서 소비자 4백98명 중 35%가 품질불량 등과 관련한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 5개 TV홈쇼핑의 9백여개 프로그램 중 70%가 사은품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조식품을 만드는 D사 관계자는 "사은품을 많이 주면 소비자에게 유리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며 "적자를 보면서 값을 내리고 사은품을 주는 회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과다한 사은품 증정은 제품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홈쇼핑 업체들이 저가 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물건은 시중보다 무조건 싸야 한다'는 원칙에 묶여 납품업체들이 적자를 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H컴퓨터 관계자는 "두 홈쇼핑에서 시중보다 30만원 이상 싼 컴퓨터를 경쟁적으로 팔았는데 우리 기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라며 "값이 지나치게 싼 제품은 품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