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따져보기>하나라도 합의 안되면 모두 원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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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노·사·정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2년 전 노사가 근로시간 단축문제 도입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해놓고도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합의를 보려다가 결국 일을 원점으로 돌리는 우(愚)를 범했다는 지적이 집중 제기된다.

◇패키지식 합의방식이 문제=현재 노사정위의 합의방식은 사안에 따라 다르다. 2000년 금융기관 및 공기업 구조조정 법안 마련을 위한 노사정 협상에서는 노사가 '경제난 타결을 위해 구조조정에 합의한다'는 대원칙만 정하고 구체적 법안은 정부에 일임했다. 그러나 이번의 주5일제와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등은 구체적 쟁점사항까지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주5일제의 경우 노사가 연차휴가 일수 결정, 임금보전 방식, 생리휴가 처리, 초과 근로시간 상한선 등 무려 12가지 쟁점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

특히 협상방식이 쟁점 중 하나라도 합의가 안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른바 '패키지'방식이어서 협상은 더욱 어려웠고, 이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애초 주5일제 협상이 결렬되리라는 관측을 하고 있었다.

노동부의 고위 관계자는 "2000년 근로시간 단축의 대원칙 합의 당시 임금보전 방식과 연차휴가 결정방식 등은 단위사업장에 맡기고 나머지 쟁점을 정부에 위임했더라면 이미 법 개정을 마쳤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하반기 중 기업연금제도 도입·노동쟁의제도 개선 등 10여가지 주요 노동현안을 처리해야 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합의방식으로는 올 하반기 중 마무리지을 계획인 비정규직 보호대책 마련도 주5일제의 전철을 밟을 소지가 크다"고 털어놨다.

◇노사정위에서는 대원칙 합의만=노사정위는 기본원칙에만 합의하고 나머지는 정부와 단위사업장에 맡기는 쪽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교육원의 이선 원장은 "산별 노조보다 기업별 노조가 강한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에 비춰볼 때 노사 대표의 협상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노사정이 문제의 기본 골격에만 합의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경우 1982년 대량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경제협의회(한국의 노사정위에 해당)에서 노사 대표는 '임금을 동결하고 고용을 촉진시킨다'는 대원칙(바세나르 협약)에만 합의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정부에 위임했다. 벨기에도 80년대 공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논의할 때 노사정위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합의하고 나머지는 정부에 위임했다.

이런 식의 협상방식 변경론은 노사정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안영수 노사정위 상임위원은 "노사가 대원칙만 합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협상타결의 시한을 정해 일정 시점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협상을 종결하고 해당 주체로 문제를 되돌려 보내는 '협상 일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임봉수·이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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