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추락… 美증시 어디로 가나 "더 떨어진다" "바닥 쳤다" 엇갈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 증시에서 다우지수 8,000선이 맥없이 무너졌지만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증시는 23일 일제히 반등했다.

이날 영국·프랑스 등 유럽 증시도 오름세로 출발했다. 미국 증시도 일단 기술적 반등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전세계적으로 주가의 단기 급락을 의식한 저가 매수세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식을 싸게 살 기회가 왔다"며 매수 추천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바닥은 아닌 것 같다"는 비관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바닥 멀었다"=비관론자들이 주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부진한 기업실적이다. 미국의 경기지표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 실적의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년 대호황을 누린 미국 기업들은 잔뜩 벌여 놓았던 과잉투자의 후유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관련 분야가 그렇다.3분기부터는 기업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던 미국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실적 전망치를 다시 낮춰잡기에 분주하다.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경제분석가인 존 론스키는 "1990년대 10년간 주가 상승률이 기업실적의 성장세를 크게 앞지르면서 주가에 거품이 끼였다"며 "현재 기업실적은 5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90년대 초까지 미국 증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5배였지만 지금은 40배에 달한다"면서 "아직 미국 주가는 고평가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잇따른 회계 부정으로 인해 지금의 실적치조차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경제의 기초여건이 좋다는 부시 행정부의 말은 믿을 수 없다"며 "다우지수는 6,000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최악의 경우 3,600선도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더 내리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미국 증시가 일본식 장기 침체의 덫에 걸려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이 살 때"=하지만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낙관론자들은 ▶미 정부와 FRB가 증시 붕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기업들도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가 방어에 나설 것이란 점에 기대를 건다. 이들은 "미국의 산업생산이 6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고, 민간 소비도 여전히 견실하다"며 "요즘 상황을 과거 1920년 말 대공황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낙관론자들은 회계부정 파문이 가라앉고 IT 부문의 투자만 살아난다면 금융시장은 빠른 속도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본다.

리먼브러더스의 애널리스트인 제프리 애플리게이트는 "연말께 다우지수는 10,250선, S&P500지수는 1,075선을 회복할 것"이라며 "경기가 본격 상승하는 내년에는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인 토머스 맥매너스는 "1년 뒤 다우지수는 9,400, 나스닥지수는 1,65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냉랭한 투자심리=갤럽과 UBS워버그가 매달 내는 투자자낙관지수는 지난달 72에서 이달에는 46까지 떨어졌다. 이는 96년 이 지수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2000년 1월에 178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1년간 시장전망에 대해 32%만이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으며, 나머지는 부정적이거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다우지수가 내년 안에 11,000선을 회복할 것이란 응답은 20%에 불과했다. 문제는 누군가 주식을 사줘야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에선 주식을 잔뜩 안고 팔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매수 기회를 찾는 투자자들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주정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