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세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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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류가 발명한 3대 의약품으로 흔히 모르핀·페니실린·아스피린을 꼽는다. 모르핀은 고통 없는 수술을 가능케 했고, 페니실린은 각종 세균성 질환으로부터 인류를 구했다. 아스피린은 누구나 한번 이상 걸리는 감기를 비롯, 각종 질병 치료에 널리 애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발명품은 역시 페니실린이다.

역사상 위대한 발명들이 대개 그러했듯 페니실린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명됐다.1928년 포도상구균 배양실험을 하던 옥스퍼드대 교수 플레밍은 한 배양접시만 세균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가 핀 접시였다. 실험실을 며칠 비워두는 바람에 깨진 창문으로 푸른곰팡이가 날아 들어왔던 것이다. 푸른곰팡이가 분비한 항생물질이 세균을 죽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를 '페니실린'으로 명명하고 이듬해 이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페니실린을 정제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작 페니실린의 추출에 성공한 사람은 11년 뒤 역시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플로리와 체인이었다. 1940년 이들이 개발한 페니실린 주사약은 생쥐 실험에서 효험을 나타내 41년부터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인류 최초의 항생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페니실린은 전장의 부상병들에게 투여돼 수많은 목숨을 구해냈다. 페니실린은 특히 처칠 총리의 폐렴까지 치료하면서 기적의 신약으로 불렸다. 연합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이 페니실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 공로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45년 플레밍과 플로리·체인은 노벨 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인류와 세균간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페니실린에 내성(耐性)을 가진 세균이 이미 50년대에 출현한 것이다. 이후 새로운 고단위 항생제가 속속 개발됐지만 이 항생제들을 이내 무용지물로 만드는 강력한 세균이 나타나는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존의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수퍼세균이 우리나라 병원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곧 개발될 것이고, 얼마 안있어 더 강력한 세균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이같은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항생제의 오·남용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감기만 걸려도 항생제를 한 움큼씩 털어넣어 온 덕분에 우리나라의 페니실린 내성률은 80~90%로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의사·약사·국민 모두가 각성할 때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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