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파문] 정부 외교적 해법에 한가닥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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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중 마늘협상의 결과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올 연말로 끝나는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만큼 농민 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국내에 반입되는 수입품들의 덤핑 여부를 조사하는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위원장 전성철)는 지난달 28일 농협으로부터 중국산 마늘에 대한 덤핑조사 요청을 접수받아 놓은 상태다. 법규상 한달 안에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29일까지 이번 건에 대해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지어야 한다.

민간 전문가들이 대부분인 8명의 위원(상근 1명, 비상근 7명)이 참석한 전체회의에서 조사 자체가 기각되면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 가드는 종결된다. 그러나 조사를 하게 될 경우 세이프 가드 종료 한달 전인 11월까지 조사를 해 세이프 가드 연장 여부를 결론지어야 한다.

하지만 무역위원회가 세이프 가드 연장이 필요하다고 결정해도 긴급관세를 부과하는 재경부에 권고만 할 수 있을뿐 최종 결정은 재경부가 내리게 된다. 무역위원회 관계자는 "결국 정부가 정치·외교적으로 해법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늘 농가 피해는=농림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중국산 마늘의 수입이 자유화되면 국산 마늘 판매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가 대략 1천억~1천5백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세이프 가드 발동 이전인 1999년 중국산 수입마늘은 2만2천2백여t이었으므로 내년엔 수입물량이 두배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커 국내 마늘시장의 5% 정도를 잠식할 전망이다.

세이프 가드가 해제돼 수입마늘에 대한 관세율이 대폭 내려가면 수입마늘값(도매가격)은 현재 ㎏당 1천2백원에서 세이프 가드 이전 당시 수준(8백원)으로 내려갈 전망이다.

그러나 2000년 마늘 분쟁 이후 정부는 가격보전 대책에만 치중해 마땅한 대체작물이 없는 상황에서 마늘 농가는 아직도 49만가구를 넘고 있다.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마늘 협상의 전말=마늘 협상 당시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는 한국이 마늘 하나도 양보 못하느냐" 며 무역보복 조치를 취하는 등 막무가내식으로 보름 이상 협상을 끌었다.

문제가 됐던 세이프 가드도 진작부터 현지 공관과 주재기업들이 중국 측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올렸지만 마늘 농가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 등의 요구로 그대로 강행됐다.

중국은 한국의 마늘 가격 폭락은 국내 생산 증가에 따른 결과라며 세이프 가드의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협상이 진행되면서 세이프 가드 1년으로 단축→3년 시행하되 연장불가 명시 등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재경부·농림부·통상교섭본부 등 관계장관들이 수차례 회의를 갖고 '연장 불가'라는 표현을 명시하지 않는 대신 '2003년 이후 자유로운 수입을 허용한다'는 선에서 타결짓도록 훈령을 보냈다.

당시 협상 관계자는 "한·중 양측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선에서 조금씩 양보하자고 설득해 이같은 문안으로 낙착된 것"이라며 "세이프 가드 연장 불가를 합의해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당시 상황에 비춰볼 때 중국 측의 강경한 연장 불가 요구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나 중국이 이를 세이프 가드를 연장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중국이 이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상 당시처럼 무역보복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시와 달라진 정황이다.

정부는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힘'에 휘둘려 합의문을 국제통용어인 영어로 만들지 않고 중국어·한국어로만 교환하는가 하면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중국산 마늘의 수입을 정부가 보장해주는 등 제대로 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발표 과정에서도 휴대전화 금수조치의 해제와 중국산 마늘의 3년간 의무수입 등의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3년 뒤에는 세이프 가드가 종료돼 수입이 다시 허용될 수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지 않아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이수호·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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