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자성어 경영 이번엔 ‘교병필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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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교병필패(驕兵必敗·싸움에 이기고 뽐내는 군사는 반드시 패한다)’.

삼성그룹이 14일 임직원 간 커뮤니케이션 통로인 ‘마이싱글’ 초기화면에 게재한 사자성어다. 만화 형식으로 구성된 이 화면은 젊은 병사들이 “우리가 또 이겼습니다. 지구 정복이 눈앞에 있습니다”라고 보고하자 한 장수가 ‘은하계 시대 개막’이라는 제목의 신문을 보면서 “신문은 보고 댕기냐”라고 질책하는 내용이다. 은하계 시대에 지구 정복에 환호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만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실적 호조에 자만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2분기에 사상 최대 영입이익(5조원)을 냈다. 삼성 관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자칫 회사 분위기가 느슨해질 수 있는데 이를 경계하자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올 하반기 경영 화두로 ‘불확실성’을 제시했을 만큼 최근 시장 환경은 변화무쌍하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면서 중국·중남미 같은 신흥시장의 비즈니스도 어려워지고 있다. 수성도 삼성의 과제다. 애플·소니 등이 스마트 TV에 뛰어들 경우 TV시장을 석권 중인 삼성의 세계 1위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잘나갈 때 가장 큰 적은 자만심’이라는 경고를 만화와 사자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대내외에 전달할 메시지가 있을 때 마이싱글을 통해 간단한 한자성어를 공개하고 있다. 간결하면서 은유적인 방법을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사자성어 경영’인 셈이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17주년이었던 지난달 7일에는 ‘마불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말발굽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화두를 꺼냈다. 지난해 4월엔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문구를 올렸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다시 팽팽하게 조여 맨다’는 뜻으로, 당시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심기일전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진 것이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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