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광고 경연장 된 할리우드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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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기 2054년, 의류 브랜드 갭의 매장에는 출입구에 들어서는 고객의 홍채를 통해 개인의 정보를 인식하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방문객이 누구인지, 지난 번에 샀던 상품이 뭔지를 순식간에 알아차리고 시스템이 인사말을 건넨다.

자석식 네트워크로 된 도로 위를 미래형 자동차 렉서스가 질주한다. 앞과 뒤를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톰 크루즈 주연·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액션 블록버스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볼 수 있는 광경들이다.

범죄를 미리 방지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보는 한 가지 재미는 PPL(Products Placement:영화 속 간접광고)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나를 보는 일이다. 그만큼 간접 광고가 그 어느 영화보다 활발하다. 펩시(음료)·불가리(향수·시계)·아메리칸 익스프레스(신용카드)·기네스(맥주)·버거킹(햄버거)·리복(운동화) 등 세계적인 브랜드만 15개에 이른다.

이들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협찬한 금액은 2천5백만달러(약 3백억원).

이 액수는 크루즈의 출연료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영화의 제작비가 1억달러(약 1천2백억원)니까 4분의1에 해당하는 액수를 광고로 충당한 셈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서로 자사 제품을 협찬하려고 앞다투는 이유는 뭘까. 단지 스필버그와 크루즈가 뭉친 대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영화 출연을 통해 하이테크 미래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 제품의 위상을 훨씬 색다르게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50여년 후에도 여전히 그 브랜드가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렉서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브랜드 이름만 빌려주고 미래형 모델에 대한 디자인을 제작진에게 일임했다고 한다.

'맨 인 블랙2'에서도 급할 때는 우주선으로 변신하는 미래형 차로 메르세데스 벤츠 뉴 E클래스가 등장한다. SF 영화 속의 치열한 PPL 전쟁이 암시하는 건 뭘까. 미래 역시 지금처럼 고도의 소비사회라는 점이다. 이는 거액을 지불하고 영화 속에 자리를 꿰찬 협찬사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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