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주먹질하는'섹스중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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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척 팔라닉은 '파격적·논쟁적'이라는 단어를 수식어처럼 달고 다니는 작가다. 처녀작 『인비저블 몬스터』는 출판사에서 책 내기를 거부했고, 팔라닉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파이트 클럽』도 욕설과 충격적 묘사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질식』도 여전히 '팔라닉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브래드 피트·에드워드 노튼 등이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진 『파이트 클럽』처럼 이번에도 현대인의 강박관념,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이 주된 주제다. 전작이 주로 폭력을 다뤘다면 『질식』은 성욕·약물이라는 코드를 사용한다.

여자 화장실·교회 등 장소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섹스 중독자, 음식을 먹다가 스테이크 조각이 목이 걸린 척 그럴싸한 연기를 해 자기를 구원해준 이들의 지갑을 벌리게 만드는 사기꾼 빅터 멘시니가 주인공이다. 빅터가 왜 이런 인물이 됐는지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다만 '파이트 클럽'에서 "폭력으로 세상을 정화하겠다"던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처럼 무정부주의적 경향이 농후한 어머니를 두었다는 데서 권력·권위에 대한 도전같은 그의 돌출 행동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요양소에 있다. 게다가 빅터만 보면 입을 꼭 다물고 아들이 알고 싶어하는 출생의 비밀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줄거리를 기본 얼개로 사이사이 빅터가 벌이는 사건들이 소설의 묘한 분위기를 키워간다. 빅터는 요양소의 거의 모든 간호사와도 이미 성관계를 가졌고, 질식 연기 덕분에 50달러를 보내게된 후원자를 "싸구려 레스토랑에서 질식하는 것은 확실히 비경제적"이라고 뇌까리며 조롱한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모자간의 애정, 여성과의 사랑도 현대 사회 속에서는 사치스런 감정같이 느껴진다. 때문에 팔라닉의 냉소적인 시선은 폭력과 섹스를 조장한다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관객들로부터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 더든은 나치 추종자"라는 비난도 들었다. 그러나 팔라닉은 역설을 통해 현대인의 중독과 감정 결핍을 신선하게 해부하고 있는지 모른다.

홍수현 기자

[note]팔라닉은 『질식』의 아이디어를 여성 편력이 심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참석한 섹스 중독자 모임에서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소설이 어느 때보다 자전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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