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검찰총장 사표 김대통령 반려로 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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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재(李明載)검찰총장이 1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아들 수사 문제와 검찰 전·현직 고위간부의 사법처리 등과 관련해 金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金대통령이 이를 반려했다.

李총장은 송정호 법무장관의 경질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방침이 발표된 직후 이재신(李載侁)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金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법을 법대로 집행한 총장이 책임질 일이 없다"면서 이를 반려했고, 李총장은 이날 저녁 "사퇴의사를 고집할 경우 검찰이 더 힘든 상황에 빠져들 수 있어 사퇴의사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송정호 법무장관 경질,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광주고검장의 불구속 기소에 이은 李총장의 사표 제출 소식에 일선 검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표 반려 소식을 뒤늦게 들은 대검 간부들이 李총장을 찾아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렵더라도 위기에 처한 검찰 조직을 위해 계속 검찰에 남아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결국 李총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사퇴의사를 고집할 경우 당초 뜻과는 달리 검찰 조직이 힘든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며 사의를 철회했다.

李총장은 지난 10일 愼전총장 등에 대한 기소를 결심하면서 사직을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장은 사표를 내면서 곧바로 기자회견을 하고 물러날 생각이었으나 청와대측이 "대통령의 입장을 보고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李총장은 이날 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통해 "검찰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드린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드리고,평생을 바쳐왔던 검찰 조직을 위해서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사퇴 이유를 말했다.

전직 검찰총수와 현직 고검장이 기소되고, 이 과정에서 검찰 내부의 갈등양상이 빚어진데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李총장은 이어 "검찰 조직이 하루 빨리 아픔을 딛고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휘부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李총장은 대전 법조비리 사태 때 당시 김태정 총장이 사표를 내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그런 소신 때문에 愼전총장 등을 사법처리하면서 사표를 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나 검찰 일각에서는 김홍업씨 수사를 둘러싼 청와대와의 갈등과 송정호 장관의 경질도 李총장의 사표 제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을 하고 있다.

李총장은 지난 5월 청와대측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오던 宋 당시 법무장관이 "내가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수사는 원칙대로 하라"고 말하자 "그만두면 함께 그만둬야지 장관 혼자 그만둬서는 안된다"고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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