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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빚더미 지자체에 파산제도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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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가 파탄(破綻)으로 치닫고 있다. 제 분수를 모르고 돈을 마구 써댄 탓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부도·파산·지불유예(모라토리엄)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대전시 동구청과 부산시 남구청의 경우 수백억원대의 호화판 신청사를 짓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빚(지방채)을 내지 않으면 직원 월급도 못 줄 지경이다. 두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빚더미에 허덕이는 곳이 수두룩하다. 올해 지방채는 더 늘어 30조원대에 육박할 조짐이다. 이는 거대 전시성·과시용 사업으로 폼 잡으려는 단체장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 사업 타당성과 재정 건전성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단체장에게 끌려 다닌 공무원들도 일종의 ‘공범’인 만큼 월급을 못 받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단체장을 뽑고, 헤픈 씀씀이를 감시하지 않은 주민들도 자유스러울 수 없다.

그렇다고 성남시처럼 채무자가 빚 못 갚겠다고 배 째라 식으로 ‘지불유예’를 선언하는 건 곤란하다. 진정 빚 갚을 돈이 없다면 인건비 절감 등 쓸 돈을 줄이는 구조조정과 자구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성남시는 올해 예산만 1조7500여억원이나 되는 전국에서 여덟 번째로 부자 지역이다. 전임자의 일이니 모르겠다는 식은 악덕 채무자의 배짱과 다름없다. 그러면서 신임 시장은 앞으로 3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자신의 공약 사업에 쓰겠단다. 이치에 닿지도 않고, ‘정치적 쇼’로 비친다.

‘일단 빚 얻어 쓰면 국민 세금으로 막아주겠지’ 하는 지자체의 행태는 더 이상 방관하기 힘든 단계에 왔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재정 사전 위기경보 시스템’을 운영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걸로는 미흡하다. 방만한 경영으로 부도에 놓인 지자체에 대해 파산을 선고하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자체 파산법을 도입하려면 전면적인 조세제도 개편이 선행돼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일정 규모의 시·군에 세수(稅收) 자율권을 확대하는 대신 재정 파탄에는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파산 위기에 몰려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훗카이도 유바리(夕張)시의 한국판을 만들어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