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이세돌의 느긋한 타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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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제2보 (18~38)=끊는 것이 맥점이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李3단은 18로 막아버렸다. 면도날 같은 이세돌인지라 이런 밋밋한 수보다는 날카롭게 끊는 수를 선호할 것 같은데 예상은 빗나갔다. 전보에서 밝혔듯이 19 자리를 끊으면 급전이 필연이다. 실전은 평화롭다. 李3단은 '싸움꾼'의 감각으로 흑의 응원 병력이 상하에 버티고 선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수순 중 21은 좋은 수.<참고도> 흑1로 버티는 것은 흑2,4가 기다린다.

24로 안정할 때 25로 지켜 徐9단은 '순조로운 출발'에 만족한다. 하기야 이 정도의 실리라면 대개의 프로들은 흑쪽이 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이세돌의 바둑을 실리파로 분류하곤 하는데 그가 진짜 실리파일까 하는 것이다. 李3단이 실리를 선취한 다음 상대의 공격을 기다려 타개로 나간 바둑은 승리 확률이 높다. 그점은 사실이지만 이판처럼 느긋한 두터움으로 판을 꾸려가기도 한다.

어떤 프로가 이렇게 반문해온 적이 있다. "다케미야9단 같은 사람을 빼놓고 실리를 좋아하지 않는 기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 곰곰 생각하면 실리파의 반대 집단을 찾을 수 없다. 세력파란 너무도 희귀하다.그런 분류 자체가 무의미할지 모른다.

29와 36(상변)은 어느 쪽이 클까.이런 곳은 일류기사라도 선택에 고심하는 대목이다. 徐9단은 36으로 벌리게 해놓고 37로 뛰어들었다.38의 공격에 흑의 다음 수가 어려운 대목.

박치문 전문기자

협찬: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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