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에도 변화 물결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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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년 상반기 열릴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시노드(synod)를 앞두고 본당별로 진행되고 있는 토론마당을 보면 마치 대교구 자체의 고백성사 같아 반갑다. 교계내 의견을 밖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천주교의 겸양은 오히려 외부에는 완고하고 보수적인 자세로 비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함께 하는 여정'이라는 뜻의 희랍어에서 나온 시노드는 교구내 주교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한 자리에 모여 교리와 규율, 전례 등을 토의하고 결정하는 교회회의를 말한다. 2000년 1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우리 나라 천주교 2백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새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로 거듭나자"고 한 정진석 대주교의 제안에 따라 열리게 된 것이다.

토론마당에 붙일 의제 선정을 위해 성직자·평신도 등에게 제시된 질문부터가 아주 솔직하다. '교회 안에서 여성은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데…''한국교회의 결정이 성직자 중심이어서 권위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는데…''본당의 재정과 운영의 투명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등 아픈 부분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교회내 남녀차별과 관련해서는 '여성들이 먼저 자신의 종속적인 위치를 자각하고 자신의 존엄성과 힘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곁들여 강한 인상을 준다.

이런 질문에 대한 의견도 '일방적인 고백성사보다는 사제를 통한 대화가 더 효율적일 것 같다''여자도 사제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8월까지 계속될 토론마당에 나올 주제들에는 생명공학 등 과학발전에 따른 생명의 새로운 정의, 피임, 사제지원자 감소와 맞물린 여성 사제 허용 문제 등이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숱한 의견 중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들을 모아 시노드 본회의에 올리는데 그 판단의 잣대가 미래 천주교의 모습을 결정할 듯하다. 모든 게 급변하는 시대에는 여성사제문제나 생명문제 등 민감한 사항에서 전향적인 시각이 더욱 요구된다.

'교회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라는, 시노드에 대한 천주교 내부의 평가대로 새 시대를 호흡하면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로 거듭날 한국천주교의 활동이 기다려진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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