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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외길 문화재 연구직 퇴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나처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거요. 평생 서울의 중심인 경복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으니까… 허허."

문화재에만 매달려온 33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조유전(趙由典·60)문화재연구소장은 퇴임 당일인 28일에도 여느 때처럼 차분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문화재연구소의 전신인 문화재연구실이 갓 출범한 1969년 연구직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4년간의 짧은, 외도랄 것도 없는 외도(국립민속박물관장 재직)를 제외하곤 줄곧 경복궁 내 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해왔다.

수천년 묵은 문화재들과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인지 말이나 행동, 나아가 성격까지 느긋하다. 평생 직장을 떠나는 자리에서 퇴임사를 하면서도 원고를 따로 준비해오지 않았다.

"퇴임한 뒤에도 어차피 문화재 위원 자격으로 발굴현장을 찾아다니고, 또 발굴하는 후배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고 할테니까 달라질 것도 별로 없어요. 퇴임은 그냥 살아가는 과정에서 거쳐가는 순간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다만 앞으로는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있을테니까 누구든지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면 금방 달려갈 겁니다."

趙씨는 문화재란 말도 생소하던 62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해 고(故) 김원룡씨에게서 배웠다. 한국 고고학의 태두인 스승의 지도로 전국의 산하를 파고 뒤지며 고고학 2세대의 대표로 자리잡았고, 별 망설임 없이 문화재 연구의 외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덕분에 백제 무령왕릉과 경주 황룡사터 등 중요한 발굴에 모두 참여할 수 있었으다. 이젠 고고학계의 원로 대열에 막 들어서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지론은 여전히 발굴보다 보존이다.

"학술적 목적이나 더 큰 파괴를 막기위해 어쩔 수 없이 발굴은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예요. 발굴도 원형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파괴니까. 평생 죄만 짓고 살아온 셈이죠."

趙씨는 문화재 위원으로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위원회에 참석해 문화재 관련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주요 발굴현장에 초빙받아 자문을 해주게 된다.

글=오병상·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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