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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軍에 봉쇄된 베들레헴 르포 : 대낮에도 텅텅 빈'유령도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쿵쿵쿵쿵…."

집채만한 이스라엘군의 메르카바 전차가 또 다시 지축을 흔들며 집앞을 지나간다. 26일 하루에만 벌써 열번째다.

베들레헴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 강태윤(44·선교사)씨의 다섯살배기 아들 사무엘이 뒤뚱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간다. "아이가 탱크 소리만 들으면 설사를 해요. 그림을 그려도 탱크만 그리고요. 팔레스타인 아이들 70%가 정신이상 증세로 고통받고 있다는데 혹시 우리 아이도 그럴까봐 겁이 납니다."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예수가 탄생한 성지인 덕에 매년 2백만명의 순례객이 몰려들던 베들레헴은 기자가 도착한 26일 백주 대낮인데도 사람 한명 얼씬거리지 않는 '유령도시'로 변해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엿새째 도시를 봉쇄하고 24시간 통금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차 수십대가 밤낮없이 시내를 휘젓고 다니며 집 밖으로 나온 사람이 있는지 감시한다.

그나마 지난 3월 말의 '방벽작전' 때보다는 나은 편이다. 그때 이스라엘군은 테러 용의자를 잡는다며 무려 38일 동안 베들레헴을 봉쇄하고 의심스런 가옥들에 포탄을 퍼부었다.

대로변에는 산산조각난 집들의 잔해가 아직도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주민들 가슴에 깊이 박힌 마음의 상처다.

"지옥이다. 닭장에 갇힌 도살용 닭도 이보다 못하진 않을 거다." 2층 침실로 날아드는 총탄을 피해 1층 거실에서 잠을 잔다는 주부 바스메(53)는 "나라없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외국 여행은 고사하고 팔레스타인 안의 다른 도시에 가려고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40일 가까이 집에만 갇혀 있어 보라. 돌아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라며 울먹였다.

한나 나세르(70) 베들레헴 시장은 "방벽작전 당시 본 피해만 5백만달러다. 경제는 오래 전부터 올스톱 상태다. 이대로 가면 2천년도 더 된 고도(古都) 베들레헴은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을 포함, 올 들어 다섯차례나 베들레헴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자치도시에 진입했다. 명분은 테러용의자 색출이다.

그러나 나세르 시장은 "이스라엘군은 지난 엿새 동안 이곳에서 단 한명의 용의자도 잡지 못했다. 방벽작전 때도 그들은 20여명을 죽였지만 그중 테러 용의자는 2명뿐이었다"면서 "이스라엘의 목적은 다른 데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겁주고 욕보여 독립 열망을 꺾으려는 것이다.그러나 무력으로는 결코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봉쇄 7일째인 27일 이스라엘군이 이례적으로 여섯시간 동안 통금을 풀어줬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짧은 '가석방' 기회를 이용해 주민들은 서둘러 장을 보고, 병원에 가고, 밀렸던 용무를 처리해야 한다.

텅 비었던 거리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람과 자동차들로 넘쳤다. 아들 손을 잡고 빵을 사러 나온 하산(가명·34·호텔업)은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 직전만 해도 2백여 객실이 꽉 차던 호텔에 지금은 단 한명도 손님이 없다"며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돈이 떨어져 구호기관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갇혀 있는 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때는 나가 놀고 싶어 문고리를 붙잡는 아이를 말릴 때였다"며 울먹였다.

7일 만에 차를 끌고 나온 택시 운전기사 나이프(37)는 "여섯시간 영업하면 손님 5,6명을 태워 50세켈(약 6만원)쯤 벌 것"이라면서 "이걸로 일곱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뚝 끊어진 예수탄생교회 앞에선 기자를 손님으로 안 노점상들이 기념품을 팔겠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나 오후 2시쯤 이스라엘군이 "한시간 남았다"고 경고방송을 시작하자 이들은 재빨리 사라졌다.

26일 오전, 출입이 봉쇄된 베들레헴 입구에서 네시간을 기다린 끝에 기자는 강선교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군 병사는 "들어가면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정신나간 테러리스트들 천지다"고 말렸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하룻밤을 묵는 동안 테러리스트들의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잠들만 하면 들려오는 이스라엘군 전차 소리만 또렷했다.

"자폭공격으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이건 분명 과잉진압입니다. 베들레헴에는 용의자가 없다는 게 오래 전에 확인됐는데도 툭하면 들어와 사람들 속을 뒤집어놓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테러범을 잡는 대신 새로운 테러범을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강선교사의 말이다.

베들레헴=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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