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풀 초(艸)세 개가 그를 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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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흔이 대장군으로 있는 한 싸우나마나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김양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김우징이 물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김흔이 대장군으로 있는 한 싸울 필요도 없이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시오."

그러자 김양이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킨 후 세 번을 크게 웃고 나서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아찬 나으리. 이는 하늘의 뜻이기 때문이나이다."

"하늘의 뜻이라니요."

김우징은 의아한 얼굴로 물어 말하였다.

김우징이 점점 더 궁금해 하자 김양이 마침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으리께오서는 낭혜화상을 알고 계시나이까."

낭혜화상. 해동신동으로 불리던 낭혜화상은 일찍이 태종 무열왕의 8대손으로 대대로 진골이었으나 애비 때 김헌창의 반란에 동조하였으므로 6두품으로 강등 당한 명문 귀족출신의 고승. 그 무렵 아직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나 신라 제1의 고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김우징이 그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알고마다요."

김우징이 대답하였다.

"그런데 낭혜화상과 이 전쟁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또한 낭혜화상과 하늘의 뜻과는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이오."

김우징이 묻자 김양이 다시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일찍이 낭혜화상은 부석사의 취현암이라는 암자에서 면벽수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화엄에 몰두하고 있었는데,어느 날 태흔 형이 내게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부석사에는 낭혜화상이라고 있는데, 아주 신묘한 고승이라고 하니 함께 찾아가서 두 사람의 앞날을 점쳐보고 점괘를 얻어오기로 하자.' 그때가 헌덕대왕 12년이었으니,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나이다. 그때 우리는 화랑으로 전국을 순례하며 심신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태흔 형의 나이는 열여덞살이었고, 신의 나이는 겨우 열세살 때의 일이었나이다."

비록 이제는 기묘한 운명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을 치러야 할 원수지간이 되었으나 10년도 넘는 옛 과거를 회상하는 김양의 표정에는 절친했던 김흔을 그리워하는 육친의 정이 스며 흐르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간신히 낭혜화상을 만날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화상으로부터 두 사람의 운명을 점지받을 수 있었나이다. 그때 낭혜화상은 태흔 형의 운명을 풀초(艸)라 참언하였나이다. 그리고 나서 풀초 세개가 태흔 형을 반드시 구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였나이다."

"풀초가 셋이란 말씀이오."

김우징이 말을 받았다.

"풀이 셋이라니,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오."

그러자 김양이 여전히 웃으며 말하였다.

"낭혜화상은 태흔 형에게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풀잎 세개면 풀이 우거져 초목이 무성할 것이외다.'그러니 나으리. 풀초가 셋이면 무슨 자가 될 것이나이까."

"풀초가 셋이면 훼()자가 아닐 것이오. 결국 훼자는 초목이 무성함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겠소이까."

김우징이 대답하자 김양이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며 말하였다.

"그렇나이다. 아찬 나으리. 낭혜화상이 이르기를 태흔 형의 운명은 풀이며, 풀 셋이 태흔 형을 위기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나이다."

"그것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김우징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이번 전쟁의 승패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좀 전에 대장군은 싸워보나마나 이번 전쟁은 반드시 필승이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이 풀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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