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연구 전통 탈피 아시아 민주주의에 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 최장집, 이하 아연)가 창립 45주년(6월 17일)을 맞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연은 미국의 후버연구소·브루킹스연구소 등과 함께 세계 5대 공산권연구소에 속하기도 했던 국내에서 최초로 설립된 대학부설 연구소.

국내외적으로 널리 읽혔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김준엽 지음) 등 단행본 2백여권, 107호까지 나온 정기간행물 『아세아연구』, 수많은 연구총서·논문집 출간으로 공산주의 연구에 관한 한 국내에선 독보적인 곳 이었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80년대 이후 탈냉전이 가속화되면서 빛을 잃기 시작했다.

연구 대상인 공산주의 자체가 소멸하면서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졌으며,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는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이에 따라 아연은 강한 지향성을 갖는 특성화된 연구를 모색하고 있다. 2년 전 최장집(정치학)교수가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미 시작된 작업이긴 하지만, 최근 더욱 본격적으로 특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화·세계화·탈냉전·정보화라는 현실에 기초해 '아세아 지역의 민주주의·탈냉전평화'라는 주제에 연구를 집중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비교연구의 방법으로 새로운 해결 방향을 찾고자 한다.

결국 냉전시대의 공산주의 연구기관에서 탈냉전시대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키워드로 하는 연구기관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연은 이미 비교민주주의연구실·한국정치연구실·정보사회연구실 등 14개의 연구실로 재편됐다.

이들 연구실은 현재 외부용역 과제 5개를 비롯, 아연이 자체적으로 발주한 프로젝트 30개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특성화된 주제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김성재)이 중점 연구소로 지정한 데다 SK가 5억원에 이르는 연구비를 지원한 데 힘입은 바 크다.

현재 확보하고 있는 연구 교수만도 대형 학과에 버금간다. 현재 17명의 전임 연구교수 숫자를 7월이면 3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여기에다 교내 정치·경제·사회·행정·역사 등 관련 학과 교수들이 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있어 실제 가용인력은 거의 단과대학 수준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아연은 새로운 연구소 모델을 시험할 예정이다. 기존의 학과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연구소가 독자적인 연구인력이 없어 연구와 교육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학제적인 종합연구소가 없진 않지만 대부분 무색무취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연은 이런 한계를 넘어 독자적인 연구기반을 갖는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교육까지 담당하는 독립대학원을 지향하고 있다. 기존의 틀에 얽매인 전통적인 학과들과 경쟁함으로써 대학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생각이다.

연세대 동서연구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등도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어, 이런 시도는 앞으로 학계의 주요한 흐름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한편 아연은 45주년을 맞아 4개의 행사를 준비 중이다.

26일(수)부터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제논의'(마이클 로빈슨 인디애나 교수 초청 콜로키엄),'민주화·정보화시대의 요청에 따른 북한정보 및 특수자료의 공유방안'(워크숍),'한국 노동자 계급 연구의 새로운 지평'(구해근 하와이대 교수 초청 콜로키엄),'한국민주주의'(최장집 교수 특강) 등 학술행사를 매주 수요일 잇따라 개최한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