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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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저기 나무가 솟아오른다. 오, 순수한 상승이여!

오, 오르페우스가 노래하누나! 오, 귀(耳) 속의 높은 나무여!

그리고 만상(萬象)은 침묵했다. 허나 침묵 속에서조차

새로운 시작과 손짓과 변화가 일어났다.

정적으로 이루어진 짐승들이 맑고

풀어진 숲, 잠자리와 소굴에서 몰려나왔다.

헌데 이들이 이렇게 소리 없었던 것은

간계나 공포에서가 아니라,

귀 기울임 때문이었다.포효,비명,웅얼거림은

그들 마음속에선 오죽잖아 보였다.

-릴케(1875~1926)'저기 나무가 솟아오른다' 중:구기성 역

소리가 지나가면서 형상들이 생겼다. 상평통보의 각진 구멍은 네모난 소리가 빠져나간 자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둥글고 맨들맨들한 소리가 어루만진 자리. 발굽 소리가 둘로 갈라졌기에 말발굽은 둘로 갈라졌고, 밀밭의 서걱이는 소리를 듣고 밀은 까실한 수염을 가졌다. 나날이 형상들이 초췌해지는 것은 사라진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때로 소리는 돌아온다, 강바닥에 비친 미루나무 그림자처럼. 하지만, 아주아주 소리를 붙잡아두기 위해 귀가 만들어졌다.

이성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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